미국 법무부가 세계 주요 D램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반독점 조사에 착수함에 따라 조사 내용과 범위, 향후 D램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세계 D램 업체 사이에서 치열한 시장경쟁이 전개되고 있는데다 D램 가격이 1분기 일시 급반등하긴 했지만 2분기부터 다시 급락한 상황에서 미 법무부가 반독점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조사대상 업체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조사 내용의 핵심은 뭔가=이번 조사가 반독점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최근의 시장상황을 고려할 때 D램 업체나 시장분석가들은 조사목적과 내용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더욱이 미 법무부가 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조사 대상을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미국내에 판매법인을 둔 독일의 인피니온테크놀로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모두를 포함시켜 궁금증은 더해가고 있다.
우리나라 D램 업체들의 미국현지 법률자문역 조차도 이번 조사는 유래가 없는 특수사건이라는 점에서 조사에 대해 전혀 윤곽을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미 법무부가 조사 요청서에서 D램 업체간의 회합이나 통신과 관련된 문건 제출을 요구하고 있어 조사 내용은 가격담합이나 덤핑에 관한 것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번 조사 내용에 대한 현지 업계의 분석가들은 크게 두가지로 추측하고 있다. 첫째로 미 당국이 일부 시장 선도업체들이 지난해 D램 불황중에 후발업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해 덤핑 등의 방법으로 가격하락을 부추겼는지 조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다른 하나는 첫 번째 사례와는 정반대로 지난해 12월초부터 올해 3월까지 D램 가격이 급등한 것을 두고 업체들의 담합이 있었는지 조사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 중 가격담합이 조사 내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 4월 델컴퓨터의 마이크로 델 회장이 “일부 D램 업체들이 카르텔을 형성,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비난한 사실에 비춰볼 때 이번 조사의 배경에는 PC제조업체들이 있으며 따라서 가격담합 여부가 조사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견해다.
◇D램 업계에 영향 미칠까=미 법무부가 전세계 메이저 반도체업체들을 대상으로 반독점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나 시장 전문가들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지난해 이후 D램 가격이 전반적인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 마진율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이번 조사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할 것”으로 평가했다.
영국의 반도체 시장조사업체인 퓨처호라이즌의 말콤 펜 사장은 “D램 가격이 지금처럼 낮은 상황에서 가격담합 여부를 조사하는 것은 미친 짓(madness)”이라며 “가격담합이 있었다면 D램가는 현재보다 10배는 높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미코리서치의 분석가인 셰리 가버는 “1분기 D램가격 급등은 생산업체들의 가격답합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고속 메모리의 일시적 공급부족에 의한 것으로 이번 조사는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삼성증권은 이번 조사행위 자체가 단기적으로 D램 업체의 PC업체에 대한 가격 교섭력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나 D램 업체간 가격담합 행위 자체에 대한 입증이 애매하고 불확실해 조사의 유효성이 의문시된다고 말했다.
LG투자증권 역시 이번 조사로 인해 D램 업계의 영향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법무부의 조사착수 사실이 전해진 후에도 D램 현물시장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일 오전 아시아 현물시장에서 128Mb(16×8 133㎒) SD램은 전날에 비해 0.44% 오른 2.15∼2.50달러(평균가 2.26달러)를 기록하고 DDR 128Mb(16×8 266㎒) SD램도 1.37% 올랐다. 반면 DDR 256Mb 제품은 0.81% 하락하긴 했지만 시장흐름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내 기업들의 반응=삼성전자는 관계자는 “19일 현지 변호사에게 이번 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지만 과거에 이와 같은 사례가 전혀 없어 보고서 작성에는 수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보고를 변호사로부터 받았다”며 “다음주나 돼야 조사의 윤곽이 잡히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우려되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현지법인을 통해 미 법무부의 협조요청 및 소환장을 받을 것으로 확인했고 법무부의 조사활동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하지만 반독점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걱정이 죄는 부분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이후 전개될 시장상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국내 업체는 미 법무부의 조사 취지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이어질 법무부의 조사활동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한다는 계획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