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아젠다 u코리아 비전>제3부(2) 제3공간과 경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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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초반의 기술혁신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무엇이라도’로 집약되는 유비쿼터스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유비쿼터스 혁명의 여파는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된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증기기관의 발명이 자본주의를 태동시켰듯이 유비쿼터스 기술혁명은 제3공간을 개화시키고 있다. 제3공간은 사회의 하부구조인 경제 시스템에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3공간의 경제 시스템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경제활동의 내용물인 재화의 성격이 변화된다. 제1공간 경제시대에는 농산물·석유·공산품 등 물리공간상에 존재하는 물질재화가 중요한 거래대상이었다. 제2공간 경제시대가 되자 전자공간상에 존재하는 정보재화(information goods)가 중요한 재화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뉴스·방송·서적 등의 정형적인 정보뿐 아니라 네트워크 게임 같은 역동적인 정보까지 인터넷을 통해 거래된다.

 제3공간 경제시대는 물질재화와 정보재화에 이어 공간재화(space goods)가 등장하는 시기다. 유비쿼터스 공간에 존재하는 각각의 사물에는 정보가 심어진다. 사물과 컴퓨터는 긴밀히 정보를 교환하면서 언제든지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비쿼터스 공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시스템이다. 유비쿼터스 공간에서 사용자는 어느 하나의 사물로부터 서비스를 받기보다는 공간 그 자체로부터 서비스를 받는다. 센서가 부착된 공간지각 안경을 낀 맹인은 유비쿼터스 공간을 시각화해 느낄 수 있다. 맹인에게 있어서는 공간 그 자체가 상품인 셈이다.

 재화의 특성은 경제 시스템의 모습을 결정짓는다. 물질재화는 소유의 대상이다. 조그만 비누와 칫솔에서부터 커다란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모두 소유의 대상이다. 얼마나 많은 물질재화를 소유하고 있는가에 의해 재산의 많고 적음이 측정된다. 이와 달리 정보재화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정보재화를 많이 소유했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재화는 소유되기보다는 접속(access)된다. 제레미 리프킨은 정보사회의 근원적 특성으로 소유의 종말을 말한다. 정보사회에 있어서 소유는 더 이상 경제를 움직이는 동인이 되지 못한다. 컴퓨터를 소유했다고 해서 그 기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 비로소 그 기능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다닐 때 정보는 비로소 살아있는 것이며, 살아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접속이 요구된다.

 공간재화는 소유의 대상도, 접속의 대상도 아니다. 공간재화는 거주(living)의 대상이다. 유비쿼터스 공간의 곳곳에 식재돼 있는 센서들을 소유한다고 해서 재산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며, 그 센서들에 접속해 정보를 수집한다고 해서 효용이 증가하지도 않는다. 센서들의 총합으로 형상화되는 유비쿼터스 공간이 제공하는 공간시각화 서비스, 증강현실 서비스, 방범방재 서비스 등이 중요하다. 이들 서비스는 유비쿼터스 공간을 소유하거나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거주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다.

 개개의 물질재화를 소유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경제를 1차원(선) 경제라고 한다면 인터넷을 통해 상호연결된 수많은 정보재화로의 접속을 강조하는 경제를 2차원(면) 경제라 할 수 있다. 1차원 경제에 비해 2차원 경제는 소비 패턴을 유연하게 변화시킨다. 동일한 내용을 책으로 볼 수도 있지만 노트북이나 PDA 또는 휴대폰을 통해서 읽을 수도 있다. 제3공간의 공간재화는 3차원(공간) 경제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의 3차원 경제는 그 풍부함에 있어서나 유연성에 있어서 면의 경제나 선의 경제를 능가할 것이다. 공간 속에 정보가 내장돼 있으며 어느 공간에서든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3공간 경제의 두 번째 특징은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변화된다는 점이다. 산업사회에서 경제활동은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물질재화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물리공간상의 공간이 바로 시장이다. 산업사회에 있어 시장은 목숨과도 같이 귀중해 이를 보호하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했다. 산업 국가의 철학과 윤리와 정책은 시장을 기반으로 한다.

 정보사회로 진입하면서 시장은 그 위력을 잃고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가 그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던 시장 경제는 보이지 않는 전자공간으로 사라진 셈이다. 시장의 가격조정 메커니즘에 의한 균형은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전자공간상에서는 네트워크 외부성과 수확체증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소수의 독과점 기업이 전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네트워크에 가입자가 많을수록 그 네트워크의 매력이 증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가입자가 그 네트워크에 가입한다. 이러한 선순환은 기존의 시장 논리를 붕괴시켰다. 가격 조절 메커니즘으로 인해 균형이 유지되리라는 시장 논리는 전자공간상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제3공간 경제는 네트워크를 공동체로 확대시킨다. 공동체란 유비쿼터스 공간에 함께 거주하는 사람과 사물을 통칭한다. 이 공간의 거주자들은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무엇이라도 공유할 수 있다. 정보만이 아니라 공간을 공유할 수 있다. 공간을 공유할 때 비로소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공간에 존재할 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공간의 소비자와 공급자는 이러한 공동체를 통해 만난다.

 대표적인 예로 유비쿼터스 아파트 단지를 들 수 있다. u아파트 단지는 단순히 물리적 상품이나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이 융합된 제3공간, 그리고 거주자들이 어우러진 공동체를 제공한다. u아파트 단지에 심어진 센서들은 비어 있는 주차공간을 안내해 주며, 보이지 않는 어린이와 강아지의 존재를 알려준다. u아파트에 대한 매력은 아파트 단지의 곳곳에 식재된 센서들과 전자공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제3공간, 그리고 거주자들의 공동체에 대한 선호도에 의해 결정된다. 거주자 개개인은 유비쿼터스 공간을 변화시킬 수 없다. 거주자들은 그들의 공동체를 통해서만 기존의 유비쿼터스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 거주자 공동체가 새로운 기기를 도입함에 따라 제3공간은 점차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공동체에서 공급자와 수요자,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공동체에 속한 거주자 자신이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다. 시장의 논리나 네트워크의 개념을 공동체에 적용하기가 어려워진다. 오히려 제3공간의 경제는 정치에 가깝다. 공동체의 의사결정이 토론과 협상과 투표에 의해 이루어지는 만큼 공동체를 통한 생산과 소비는 경제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행위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공간은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분리됐던 정치와 경제의 경계를 다시금 모호(blur)하게 만들고 있다. 제3공간의 경제는 수많은 소규모 공동체를 통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재화를 다시 한 번 소리없이 확산시키고 있다.

<공동집필>

 하원규 ETRI 정보화기술연구소 IT정보센터장 wgha@etri.re.kr

 김동환 중앙대 공공정책학부 교수 sddhkim@cau.ac.kr

 최남희 청주과학대 행정전산학과 교수 drnhchoi@cjn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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