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24)겉도는 대학부설 IT교육

 “전산원에 입학한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졸업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전문적인 전산기술을 배워 졸업하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C대학 전산원 이모씨(22·여)는 대학부설 IT전문 교육기관인 전산원의 현주소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녀는 전산원에 입학해 첫 학기가 끝난 후 200명 중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는 등 왜 전산원에 다녀야 하는지 정체성에 의문을 갖는 학생이 많다고 토로했다.

 또 이 학생은 전산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의 대다수는 전문 IT능력을 배양하는데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학점은행제에 해당되는 학점을 따는 데 혈안이라고 설명했다.

 중앙대를 비롯한 숭실대·동국대·명지대 등 4년제 대학들은 사회교육 차원에서 정보기술(IT) 활용능력을 교육하는 전산원이라는 교육기관을 두고 있다. 이 교육기관은 첨단 IT교육의 산실을 지향한다.

 그러나 현실은 IT교육의 산실이 아닌 4년제 대학 편입을 위한 입시학원으로 변질되고 있다.

 동국대 전산원 신문이 최근 재학생을 대상으로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6%가 편입을 졸업 후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은 18%였으며 유학과 창업 순으로 진로를 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전산원 학생들의 대다수는 전산원을 2차 교육기관으로 가기 위한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학위를 취득해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는 것에 관심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산원측은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할 수 있는 자격있는 학생을 배출하는 것이 인재 양성의 한 측면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4년제 대학으로의 편입은 질 높은 IT인력 양성을 위한 전단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전산원 학생들은 공무원들이 가산점을 위해 쓰이지도 않는 자격증을 무차별적으로 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점을 채우기 위해 사회에서 쓰이지 않고 효용가치가 없는 구시대적인 자격증을 따는 데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다.

 학점으로 인정되는 자격증은 워드프로세서·컴퓨터활용능력·사무정보기기응용산업기사·인터넷정보검색사 등으로 사회에서 활용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렇게 학생들이 전산원을 통해 IT전문 능력을 키우기보다 입시를 대비한 곳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산원이 가진 태생적 한계도 원인이다.

 대다수 전산원들은 4년제 대학의 부설로 설립돼 일반 사설학원도 아니며 전문대처럼 정식 학위를 주는 기관도 아니다. 전산원은 일반인이 자유롭게 등록하는 학원과 달리 2년제 전문대처럼 입학전형을 통해 교육받을 수 있다. 교육과정도 전문대학과 같이 한해 2학기로 구성되며 수강료도 대학의 등록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런 구조로 인해 대학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이 전산원을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는 곳이 아닌 도피처로 생각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실습 위주의 교육과 발빠르게 변하는 커리큘럼으로 IT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 전산원이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을 하는 것도 전산원의 본래 목적을 위협하는 요소다.

 대부분 전산원들은 멀티미디어·전자상거래·인터넷정보·정보처리 등 4개 학과과정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진다.

 정보처리학과를 제외한 나머지는 몇 년 사이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을 타고 신설돼 4년제 대학에서조차 고급지식을 갖춘 교수나 강사를 찾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산원들은 해당과목 전공을 이수한 강사를 확보하지 못하고 유사 과목을 이수한 강사들에게 해당 전공 교육을 강행시키고 있다.

 C대학 전산원 박모 학생(21·남)은 “인터넷 정보학과의 경우 mySQL 데이터베이스 실습시간에 mySQL이 아닌 오라클을 사용해 강의하는 교수도 있다”며 “해당 과목시간에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수업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실습 두 시간 동안 책만 그대로 읽는 교수도 있다”며 “수업이 아니라 혼자 실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습을 중심으로 해야 할 학생들의 실습실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물론 관련 소프트웨어가 구비되지 않아 이론만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전산원의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M대학 전산원 서모 학생(22·남)은 “대학교와 전산원이 하나의 캠퍼스에 있다보니 전산원 시설을 학부생들에게 빌려줘 전산원생들은 공간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며 “실습실과 도서관 등 전산원 학생을 위한 전용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멀티미디어과는 그래픽 실습이 가장 중요하지만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10대도 안되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돌아가면서 사용해 정작 해보고 싶은 실습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전산원들은 IT전문 인력의 효율적인 양성을 위해서 현재 대학처럼 운영되는 교과 과정을 전면 개편해야 하지만 대학의 학사과정과 다르게 운영되면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점을 딸 수 없는 구조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