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망간 영역파괴는 기존 통신서비스의 시장성장 속도가 둔화된 가운데 기존 통신망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과 맞물려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이종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책임연구원은 “통신망간 영역다툼은 사업자들이 막대한 투자부담이 있는 새로운 망구축보다는 신규서비스 개발을 통한 망효율성을 높이려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역무(법으로 정해진 서비스의 종류) 침범이 없다면 공공재 성격을 지닌 통신망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진행중인 서비스 복합화와 유무선 통합추세에 따른 역무침범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향후 통신망간 경쟁구도를 지켜보면서 관련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황 및 전망=지금까지 하나의 서비스는 하나의 통신망으로 구현되다시피 했다. 유선전화망, 이동전화망, 무선데이터망, 무선호출망, 주파수공용통신망 등은 이름 그대로 서비스였다. 그런데 최근 통신기술이 발전하고 망사업의 다양한 서비스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영역이 파괴되면서 통신망간 경쟁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전국민의 50% 이상을 가입자로 확보, 통신시장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있는 이동전화업체들은 매년 수천억원을 투자해 구축한 통신망을 바탕으로 영역파괴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미 무선 저속데이터 통신부문을 집어삼키다시피한 이동전화망은 보안시스템이나 신용카드결제기 등에 사용되는 유선 저속데이터망까지 대체하려 하는 한편 주파수공용통신(TRS)망의 영역침범도 불사하고 있다. 특히 KTF와 KT파워텔은 콜택시 서비스를 놓고 KT 자회사끼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동전화망에 데이터시장을 빼앗긴 무선데이터통신 업체들은 유선 저속데이터망 영역을 파고드는 한편 텔레매틱스 등의 신규서비스에서 이동전화망에 도전하는 생존전략을 펴고 있어 통신망간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경쟁양상은 앞으로 벌어질 통신시장의 변화에 비하면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음성과 데이터망의 통합이 급진전되면서 동시에 유선과 무선의 경계가 사라지는 향후 통신시장에서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통신망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무선랜과 음성데이터통합(VoIP) 등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같은 영역충돌에 가속이 붙고 있다. 박진현 KISDI 연구원은 “유무선통합의 대명사격인 무선랜서비스의 경우 커버리지가 확대되면서 서로 다른 가입자망을 기반으로한 유선망 사업자와 무선망 사업자의 정면대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쟁점=통신망 영역파괴를 두고 여러 통신서비스의 통합이냐 각 통신망의 특성에 맞는 서비스의 각개약진이냐를 놓고 이동전화망 사업자와 다른 사업자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동전화망 사업자들은 ‘하나의 경로에 모든 서비스를 통합, 제공한다’는 통신서비스의 발전방향을 감안하면 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동전화망에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앞으로의 통신서비스는 음성과 데이터로 나뉜 역무구분 등 현 규제가 무의미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시외전화와 이동전화의 직접경쟁과 이동전화 사업자의 데이터 서비스 도입 등에 원칙으로 적용된 ‘서비스 영역에 필요 이상의 규제를 둬 국민의 편익증진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도 같은 맥락이며 이것이 통신시장의 미래지향적 발전방향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통신사업의 주도권을 놓친 무선호출, 무선데이터, TRS사업자들은 각각의 망이 지닌 특성에 맞는 서비스를 적극 육성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이들 사업자는 “망의 제공가격과 전송속도, 특정 서비스에 맞는 망의 특성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다양한 서비스를 놓고 여러 통신망이 경쟁을 벌이는 것이 경제원칙에도 맞는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일단 영역파괴가 발생한 이상 경쟁은 불가피하며 수요가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경쟁이 점화될 것”이라며 “불필요한 중복투자가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경쟁체제를 유지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