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의 존속으로 반도체 업계의 빅뱅이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세계 메모리 업계가 잇따른 소송과 제소, 전략적 제휴 등 적자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상 최대의 반도체 불황을 겪으면서 경쟁력이 취약한 업체가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대형 업체에 흡수합병되는 메모리 빅뱅을 기대해온 반도체 업계는 빅뱅이 무위로 돌아가자 입지 강화를 위해 경쟁업체에 대한 잇따른 제소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메모리 업체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형태의 치열한 소송 전쟁을 겪고 있으며 이같은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대형 소송건은 줄잡아 10여건에 이르고 소송 내용 또한 일대일, 일대다, 다대일, 다대다 등으로 전개되며 사상 유례없는 복잡 다단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미국의 메모리 디자인 업체인 램버스를 상대로 하이닉스·마이크론테크놀로지·인피니온테크놀로지 등이 특허침해와 관련된 소송을 진행중이고 램버스는 반대로 이들 업체에 대한 맞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또 미국의 연방무역위원회(FTC)는 램버스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반도체 제품에 대해 부당하게 특허권을 행사한 혐의를 들어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일본의 마쓰시타전기와 도시바는 각각 지난달 삼성전자를 메모리 관련 특허 침해 이유로 미국 연방법원에 제소했으며 삼성전자는 이에 맞서 이들 회사가 자사의 특허도 사용중이라며 역소송을 냈다.
이달 들어서는 독일의 인피니온이 한국 메모리 업체들이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며 유럽연합(EU) 집행위에 한국산 수입제품에 대해 상계관세를 물리도록 정밀조사를 요청했다.
최근에는 미국 법무부가 미국시장에 진출해 있는 한국·독일·대만·일본 등 세계 주요 8개 메모리 업체를 대상으로 반독점법 위반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이번 조사의 배경에는 미국내 PC제조업체들이 있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이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상 최초의 PC 업계와 메모리 업계의 주도권 경쟁이 예상된다.
시장분석가들은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빅뱅 무산에 실망한 메모리 업체들이 곧 도래할 메모리 호황에 앞서 적자생존의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PC 업계가 메모리 업계를 대상으로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는 것도 하반기 이후 닥쳐올 메모리 수급부족에 대비해 그동안 행사해오던 메모리 공급가격 책정의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독일 정부로부터 1억93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은 바 있는 인피니온이 상계관세 조사를 요청함에 따라 불만이 증폭된 우리나라 업체들이 맞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데다 메모리 업계 빅뱅 무산으로 업체들의 치열한 시장경쟁이 재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업체 및 업계간 소송 전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