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싣는 순서
(1) 빅뱅 2라운드에 돌입한 메모리업계
(2) 합종연횡을 계속하는 비메모리업체들
(3) 재도약을 꿈꾸는 일본 반도체산업
(4) 범중화권의 급부상
(5)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반도체업계가 빅뱅 2라운드를 맞았다. 1라운드의 화약고인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메모리사업 통합이 불발로 끝나면서 반도체 빅뱅이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독자움직임을 보여온 TI, ST마이크로, 모토로라 등 비메모리진영은 합작사를 설립하는 등 적과의 동침을 통해 빅뱅 2라운드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 시장의 재편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벼랑끝에 섰던 일본업체들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으며 거대시장으로 부상한 중국과 연대하는 대만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세계 1위의 D램 생산국인 한국은 빅뱅의 기로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중이다. 세계 반도체시장 빅뱅의 현장을 5회에 걸쳐 긴급 점검한다. 편집자
‘D램 시장 재편은 일장춘몽인가.’
지금부터 꼭 1년전인 2001년 6월 하순. 전년 동기 대비 60%의 매출급감이라는 불황의 늪에서 절치부심하던 반도체업계에 한줄기 희망의 메시지가 던져졌다. 일본 도시바의 D램 감산 발표였다. 과잉생산으로 공멸위기에 놓였던 반도체업계에 탈출구가 생긴 것이다. 이어 NEC·후지쯔 등이 감산을 발표했고 하이닉스도 여름휴가와 추석연휴를 이용해 부분 감산을 실시했다. 반면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감산에 동조하지 않았다.
회복기에 들어설 것이라고 기대했던 3분기가 지나도 메모리 가격은 좀처럼 반등하지 않았다. 때문에 힘이 달리는 일본 업체들은 시장포기를 선언했고 유동성 위기에 몰렸던 세계 반도체 3위 하이닉스가 시장에 매물로 등장했다.
마침내 지난 12월 3일 세계 반도체시장에 메가톤급 충격파가 전해졌다. 마이크론과 하이닉스가 전략적으로 손잡고 D램사업을 통합하겠다고 선언한 것. 반덤핑, WTO 자유무역질서 위배 등을 내세워 하이닉스 목조르기에 앞장섰던 적과 한 배를 타겠다는 양사의 발표는 세계적인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D램가격은 빠르게 회복됐다. 빅뱅에 대한 기대감과 일부 D램 업체의 감산, 수급구조 개선 등의 효과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1달러 미만까지 곤두박질쳤던 128Mb SD램 가격이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역사상 최대 빅뱅이 될 뻔한 2위 마이크론의 3위 하이닉스 인수는 결국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고, 양사 통합으로 반사이익을 기대했던 업체들의 희망은 수포로 돌아갔다.
D램 업계는 이제 빅뱅 2라운드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마이크론·인피니온-대만의 3강 구도를 유지해 남은 생존자들끼리 시장을 배분하자던 계획이 깨지면서 다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시작했다. 동지가 될 뻔 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소송을 벌이는가하면 적자생존을 위해 다시 힘을 합칠 협력자들을 물색하고 있다. 인피니온은 난야와 300㎜ 반도체팹을 합작설립키로 한 데 이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에는 상계관세부과를 위한 정밀조사를 유럽연합(EU)집행위에 요청했다.
업계 최대 라이벌에서 빅뱅 1라운드의 주역으로 등장했던 마이크론과 하이닉스의 재협상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관건은 시장회복이다. 시장회복 시기에 따라 D램업체들의 새로운 빅뱅 구도는 예측불허로 흘러갈 전망이다. 세계 메모리업계는 이제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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