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필립스LCD가 5세대 TFT LCD 라인에 대한 대규모 추가 투자계획을 확정한 것은 전략적으로 TFT LCD를 국내 1위, 나아가 세계 1위 제품으로 육성키 위한 LG그룹 차원의 ‘승부수’로 풀이된다.
TFT LCD는 사실 LG가 삼성을 누를 수 있는 대표 품목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LG는 이미 지난달 세계 최초로 5세대 라인을 가동하며 생산능력 기준으로는 삼성을 제쳤다. 따라서 이를 계기로 최대 라이벌인 삼성의 추격권에 벗어나 ‘세계 1위’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하겠다는 전략이다.
◇세계 1위 굳히나=LG필립스가 계획대로 내년말까지 투입기판 기준으로 월 12만장 규모의 5세대 라인을 구축하면 TFT LCD업계에서는 절대 강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현재로선 삼성전자가 유일한 경쟁자이지만 6개월 이상 거리를 두고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샤프·히타치·도시바 등 일본업체들은 TV용 등 대형 LCD와 모바일기기용 중소형 제품에 특화하며 경쟁권에서 멀어졌다. 신흥 강국인 대만의 AUO·CPT·한스타·퀀타 등도 5세대 투자에서는 LG와 1년 이상 격차가 벌어져 있는 상태다.
문제는 생산능력 1위인 LG가 시장점유율이나 매출면에서 언제쯤 삼성을 따라잡고 명실공히 세계 1위에 등극하느냐는 점이다. 디스플레이서치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LG는 2분기 현재 1위 삼성을 맹추격, 1%포인트차 이내로 근접했지만 여전히 2위다. 하지만 세계 TFT LCD 시장이 공급부족 상황이란 점을 감안할 때 생산능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LG가 삼성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왜 삼성 규격인가=LG의 추가 5세대 투자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라이벌인 삼성규격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 때문. LG와 삼성은 TFT LCD 산업 초창기인 90년대 중반 2세대(370×470㎜) 이후 줄곧 다른 기판 규격을 적용해 왔다. 특히 삼성은 LG보다 늘 조금씩 큰 사이즈를 채택했다. 3.5세대에선 ‘590×670’ 대 ‘600×720’, 4세대에선 ‘680×880’ 대 ‘730×920’ 등으로 삼성이 앞섰다. 5세대 역시 LG가 ‘1000×1200’으로 선수를 치자 삼성은 ‘1100×1250’ 규격을 채택했다.
LG가 ‘자존심’을 버리고 삼성 규격을 쫓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LG의 기존(1000×1200) 5세대 라인은 모니터용 18.1인치에 최적화한 라인이며 삼성은 17, 19인치용을 겨냥한 것이다. 그런데 삼성이 모니터 시장에서 17인치로 ‘대박’을 터뜨리자 모니터용 TFT LCD 시장 1위를 자부해온 LG로서도 극단적 처방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즉 LG의 삼성 규격 채택은 삼성이 주도하는 17인치 모니터용 시장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모니터용 LCD 1위이자 생산능력 기준으로 세계 최대 TFT LCD 메이커인 LG로선 급부상하는 17인치 시장에 탄력적으로 대응키 위해 17인치에 최적화된 삼성 규격을 적용하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LG필립스측도 “후속 5세대 라인에서 17, 17인치 와이드, 18인치, 23인치 와이드 등 다양한 종류의 LCD를 제조할 것”이라며 17인치 시장진출을 공식화했다. LG는 이미 17인치 일부 모델을 개발, 출시를 앞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LG필립스가 삼성 규격으로 5세대 추가투자를 단행키로 함에 따라 일단 TFT LCD 5세대 표준 규격 싸움은 삼성의 우세승으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5세대 투자를 추진중인 외국업체들도 삼성 규격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주력 모델 유형에 따라 최적화할 수 있는 기판 사이즈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LCD 산업 속성상 기판 규격은 더이상 무의미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LG의 삼성 규격 채용이 향후 17인치 등 모니터용과 차세대 TV용 LCD 시장경쟁의 역학관계에 어떻게 작용할지가 더 큰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에선 “LG가 자존심까지 버리고 삼성 규격으로 5세대 확장투자를 선언한 것은 다양한 공급 대응 능력을 바탕으로 TFT LCD부문에서 반드시 세계 제패에 성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관련 그래프/도표 보기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LG필립스 라인별 패널 생산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