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PL법 책임범위 문서화 요구에 제조업계 긴장감 고조

 제조물책임(PL)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B2B(대기업과 하도급업체)간의 PL 범위에 대한 문서화 문제를 놓고 제조업계 내부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대기업체들이 부품 결함시 책임범위를 폭넓게 규정한 ‘PL 개정판’ 하도급 계약서를 협력업체에 요구함에 따라 중소업체들이 장고에 들어가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는 PL 분쟁의 1차 소송 당사자인 대기업측이 부품결함 등으로 인한 손해를 협력업체에 구상 청구하는 데 있어 계약서에 더욱 명확한 법률적 조항을 마련해 놓겠다는 포석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이같은 움직임은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1·2차 부품 공급업체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국내 제조업계의 하도급 관행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현재 PL 환경에 맞춰 하도급 계약조건을 강화하는 데 가장 앞장선 쪽은 자동차산업이다. 조그만 부품이상이라도 인명사고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은 완성차업체들이 부품 공급업체에 대한 PL 책임을 앞장서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르노삼성차는 핵심부품을 직접 납품하는 700여개 회사와 하도급 계약서에 PL 책임조항을 새로 명시하는 작업을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자동차도 8월 말까지 협력업체들과 PL 관련 계약서 개정작업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특히 완성차업계의 ‘PL 개정판’ 하도급 계약서를 수용한 현대모비스·만도기계 등 대형 자동차부품업체들은 자신들의 협력업체에도 이같은 계약조건을 그대로 준용하면서 자동차부품업계 전체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전자부품업계에도 B2B간 PL 범위를 둘러싼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이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소비자 안전과 직결되는 전자부품 공급업체에 대해 PL 범위를 계약서에 규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LG전자의 한 법률담당자는 “전원부나 모터, 컴프레서 등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의 경우, 상호 PL 범위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면서 “머지않아 PL 환경에 맞는 하도급 약관이 전자부품업계에 보편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하반기에는 대기업과 직접 연관된 전자부품업체뿐만 아니라 영세한 부품 제조업체도 하도급 계약서상에 PL 조항을 새로 삽입하라는 유무형의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PL 전문가들도 7월 PL법 시행에 따라 하도급 계약서도 바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부품업계는 대기업들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PL 조항까지 요구할 것으로 보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최근 하도급 계약을 새로 맺은 한 전자부품업체 사장은 “PL 조항이 명시된 계약서에 반강제로 서명을 했는데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한국표준협회의 PL 담당자는 “최근 대기업과 하도급 계약서의 PL 문제를 문의하는 상담이 부쩍 증가하고 있다”면서 “정부기관이 나서 B2B간의 PL 관련 법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