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삼보컴퓨터 등 자기브랜드 사업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사업을 병행하고 있는 PC업체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삼성전자의 OEM거래업체인 델컴퓨터·삼보컴퓨터의 최대고객인 HP 등이 최근 국내 PC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면서 경쟁관계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델컴퓨터·HP 등은 삼성과 삼보부터 공급받은 PC를 주력 제품으로 내세운 데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거나 비슷해 원공급업체인 삼성과 삼보에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협력사에서 경쟁사로=HP는 지난해 삼보 PC수출 물량의 40%인 100만대 정도를 구매한 최대 고객이다. 한국HP가 주력 홈PC로 내세우는 파빌리온 시리즈는 삼보컴퓨터가 제조·공급해준 제품이다. 한국HP는 지난달 대략 5000대의 파빌리온PC를 판매했으며 컴팩 물량을 포함하면 대략 1만대 정도를 팔았다. 이는 삼보컴퓨터의 같은달 데스크톱PC 판매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현재 LG홈쇼핑은 삼보의 1.6㎓ PC본체와 17인치 모니터, 프린터를 포함한 패키지 제품이 149만9000원, 한국HP의 1.7㎓ PC본체와 17인치 모니터, 그리고 프린터·스캐너 등을 묶어 159만8000원에 판매중이다. 옵션과 제품 규격을 감안하면 거의 비슷한 가격대에 판매되고 있는 셈이다.
델컴퓨터코리아가 최근 중소기업 등을 겨냥해 선보인 노트북PC ‘래티튜드 X200’ 시리즈는 삼성전자가 슬림형 노트북PC인 ‘센스Q’ 모델을 기초로 재설계해 델사에 공급한 제품이다. 외양과 규격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기본 설계 개념은 같다.
델컴퓨터는 이 제품을 229만원에 판매하고 있지만 이와 비슷한 삼성전자의 제품은 이보다 40여만원이 비싼 27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델의 ‘래티튜드 X200’ 제품은 전세계에서 판매가 시작돼 삼성전자의 수출 모델인 센스Q와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 비전으로 방향 선택=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양사의 목표 시장이 다른 데다 델의 인지도가 국내에서 크게 떨어지는 만큼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삼성의 국내 PC사업과 자기브랜드 PC수출 사업에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삼보컴퓨터도 “HP의 현재 국내 시장점유율을 놓고 보면 아직까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HP의 올해 시장점유율 목표가 두 자릿수인 데다 하반기에는 가격 드라이브까지 걸 가능성이 높아 삼보가 결코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히 델이나 HP의 구매력을 감안할 때 가격을 삼성전자나 삼보의 PC가격보다 더 낮게 책정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PC업계 한 관계자는 “대만업체들의 경우 아예 자기브랜드를 포기하고 OEM전문업체로 돌아서 이러한 고민이 없으나 국내 업체들의 경우 OEM사업과 자기브랜드 PC 사업을 병행하다보니 이러한 문제발생 소지가 늘 있었다”며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와 OEM사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