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가까이 격렬하게 치러진 한일 월드컵이 이제 결승전과 3·4위전 만을 남겨놓고 있다. 수많은 이변과 환호가 이어졌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최대의 관심사는 우리나라 대표팀과 감독을 맞고있는 거스 히딩크다. 200여 참가국 가운데 4강에 오른 선수들의 투혼은 경이로웠고,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수를 띄우는 히딩크 감독의 능력 또한 대단했다. 특히, 히딩크 감독은 게임 하나 하나에서 승부사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선수들과 붉은악마 응원단과 함께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16강 이탈리아와의 게임.
후반전 막판 스코어 0 대 1. 히딩크는 수비수 김태영, 김남일을 빼고 이천수·황선홍을 투입시켰다. 이어 홍명보를 빼고 차두리를 투입시켰다. 지면 끝인 상황에서 승부사는 최후의 카드를 빼든 것이다. 그 와중에도 우리 팀의 시스템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훈련된 포지션 이동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갔다. 그 작전은 성공을 거두어 설기현의 동점골과 연장 후반 안정환의 역전 골든 골로 경기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8강 스페인과의 게임.
스페인은 조심스럽게 나왔다. 안전위주의 작전으로 미드필드를 강화했고, 뛰어난 개인기로 우리 진영을 유린했다. 우리선수들의 체력은 한계에 도달했고, 움직임은 느렸다. 스페인 감독도 그것을 감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더 이상 몰아붙이지 못했다. 그때 히딩크는 유상철을 빼고 이천수를 투입하는 등 공격력을 증가시켰다. 이후 게임을 지배할 수 있었고, 결국 승부차기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우리선수들과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당시 최고의 희열을 느낀 것은 히딩크 감독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이뤄진 게임을 통해 23명의 선수와 코칭 스태프, 4700만명의 우리 국민보다 더욱 주관적인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한국팀의 첫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력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한국선수들의 열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지시하는 점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노력했으며 한결같이 착하고 순수했다. 한국선수들은 월드컵 그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했으며 그 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다. 그런 점에서 한국선수들은 세계 어느나라의 선수들보다 우월하다. 그러한 한국축구의 기본 잠재력은 일찍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으며, 내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국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나를 들뜨게 한다, 준비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어떠한 비판도 나는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비판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2002년 6월을 기다려 왔다. 한편으로 그것은 단순히 월드컵 무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나는 궁극적으로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강력한 팀으로 가는 길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
우리를 들뜨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모든 조건과 경우에 앞서 승부사의 희열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축구선수 출신의 축구감독에 앞서, 높은 연봉을 받고 맡은 일을 수행하는 비즈니스에 앞서 승부사로서 개인적 희열이 보다 더 우선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승부사의 희열은 월드컵 첫승, 16강, 8강, 4강으로 이어졌다. 비록 결승진출에 실패했지만 분명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대로 한번씩 한번씩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도 그는 승부사의 쾌감을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밥 벌어먹고, 앞으로도 몸 담아야 하는 유럽의 축구 열기에 찬물을 끼얹듯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보따리싸게 하면서도 그는 경기에 관한 한 승부사로서 전례없는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히딩크 감독의 승부사적 기질과 우리선수들의 정신력이 어우러져 이룩한 월드컵 4강의 성적은 경이로운 것이긴 하지만, 히딩크 감독에게는 예측가능한 결과였다.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는 말에는 이미 어느정도의 가능성이 예측되어 있다. 그러나 승부사 히딩크 감독의 예측에서 벗어난 현상이 하나 있었다. 지금까지 축구역사상 전례가 없는 경이로운 현상, 그것은 운동장 안은 물론 밖과 길거리에서 일어난 사회적 현상으로, 분명 히딩크 자신도 예측할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붉은악마’
히딩크 감독은 스페인과의 경기가 끝난 후 평소와 달리 그라운드로 걸어나가 관중석을 향해 머리숙여 인사를 했다. 자신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경이로운 힘을 보내준 한민족에 대한 경의라고 여겨진다. 대한민국 전 국민들의 승부사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붉은악마의 응원은 히딩크에게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축구를 통해 발휘된 대한민국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열기,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 앞을 가득 메운 수백만 붉은 물결은 곧 힘이었다. 에너지였다. 그 에너지는 승부사들이 갖는 에너지이고, 희열이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진행된 현상이었다. 개인적인 승부사적 기질이 아니라 민족전체가 승부사로 변하여 붉은 옷을 입고 응원하는 그 현상을 히딩크가 좀더 가까이에서 좀더 깊이 있게 인식했다면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붉은악마들은 스탠드에 ‘어게인 1966’이라고 썼다.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월드컵 8강에 오른 것을 재현하자는 것이었다. 붉은악마들은 이미 북한을 우리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남한과 북한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나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발신한 것이었다. 무작정 축구를 위해 붉은 옷을 입은 것이 아니었다. 축구만을 위해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니었다. 축구를 통해 축구에 국한되지 않은 힘을 보여준 것이었다.
승부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장악하고 활용한다. 위대한 승부사 히딩크가 이룩한 그 신화조차도 우리민족이 앞으로 즐겨야할 승부에서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이것은 추세고 흐름이다. 민족의 가능성이며 국민적 에너지다.
때문에 히딩크 감독이 그 붉은 힘을 직접적으로 인지한다면 그가 지금까지 게임을 통해 느낀 희열의 강도는 한참 엷어질지도 모른다. 승부사는 자신이 희열을 느끼는 승부가 더 큰 승부 안에 포함되어있다면 그 재미는 상실되기 때문이다.
준결승전에서 우리 대표팀이 독일에 패배한 날에도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 앞의 거리응원단들은 기죽지 않았다. 축포가 터졌다. 패배 자체도 즐기는 듯 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게임에 불과했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축구에 국한된 승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함성과 열정은 앞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통합하고 조율할 수 있는 민족으로 혼을 정화시키는 제의였기 때문이다.
이제 월드컵이 끝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을 ‘IT 월드컵’이라고 이름붙였다. 개막식의 주제도 IT였다. 예사롭지 않은 현상이다. ‘IT 승부사’, 기회가 왔다. 월드컵을 통해 이룬 민족혼의 정화와 승리의 조건을 활용하여 진정한 승부를 즐겨라.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