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가 필요하다.’
월드컵 사상 최대 이변을 일으킨 ‘불세출의 경영자’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의 기초체력을 키운 뒤 찾은 것은 다름아닌 ‘킬러’. 골을 넣을 수 있는 스타선수였다. 히딩크 감독이 선택한 안정환, 설기현, 황선홍 등 스타선수들은 고비마다 극적인 골을 터뜨려 기대에 부응했다. ‘아시아 스타’ 혹은 ‘세계무대 벤치워머’에 머물던 이들 선수에게 월드컵의 막이 내리기 전부터 세계무대의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스타’의 해결사 역할을 제대로 해낸 그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세계 최고의 스타기업’이 필요하다. 월드컵을 계기로 업그레이드된 국가인지도와 결집된 국민의 힘을 경제발전과 국운부흥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첨단 IT와 최고의 맨파워, 막강한 투자력으로 중무장한 스타기업이 세계무대에서 제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제 ‘세계 최고의 IT기업=코리아’라는 등식을 성립시킬 수 있는 ‘스타’의 탄생에 매진할 때다.
◇이미 시동은 걸렸다=한국축구와 역동적인 경제발전, 최첨단을 달리는 IT인프라에 세계의 경이로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디스카운트 코리아에서 프리미엄 코리아로의 극적인 전환이다. 외국시장에서 평가의 대상에도 들지 못하던 코리아 출신 ‘삼성’ 브랜드는 2∼3년새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삼성전자 해외사업 관계자는 “브랜드 인지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고 월드컵을 계기로 관심이 폭발적으로 쏠리고 있다”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헤게모니가 전환되는 혼란기에 확신을 갖고 IT산업을 주도하는 한국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전자업종의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기술과 소비성향을 주도하는 히트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시장의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있다. 정보통신, 디지털가전, 반도체부문의 세계적인 기술경쟁력을 확보, 새로운 가능성을 선도하는 ‘스타’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것. KT는 월드컵 기간중 막강한 IT인프라와 함께 무선랜, 브로드밴드 인터넷, 홈오토메이션, e비즈니스 등 첨단 기술력을 자랑해 ‘스타’ 통신사업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 비즈니스위크지는 2002년 IT 100대 기업에서 삼성전자를 1위로, KTF, SK텔레콤을 각각 4위, 9위로 꼽았고 포천지와 포브스지는 삼성전자, SK(주), LG전자, 한전, 포스코 등을 500대 기업에 올려 스타후보로 꼽았다.
◇무엇이 필요한가=스타기업은 영업성적표뿐만이 아니라 선도기술, 기업문화, 이미지 등을 융합한 브랜드파워가 필수적이다. 브랜드파워는 산업과 경제의 헤게모니를 의미하며 국가이미지와의 동반관계를 형성한다. 이에 따라 월드컵을 계기로 상승한 국가브랜드를 기업브랜드, 즉 ’스타기업’으로 표현되는 산업·경제의 헤게모니로 연결시키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정부는 IT월드컵의 후속대책으로 디지털TV 등 세계일류 상품과 새로운 IT산업 모델을 육성해 한국을 아시아 및 세계 IT의 메카로 삼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국내시장을 첨단기술의 시험장으로 만들고 외국인력의 IT교육 국내유치, 한민족 IT전문가대회 해외개최 등을 추진하겠다는 세부내용은 IT코리아의 브랜드로 스타기업 탄생의 기반을 닦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당사자인 기업도 전략구상에 바쁘다. KT는 핀란드와 노키아가 이동통신산업의 플랫폼이 된 것처럼 한국을 세계 IT산업의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삼성전자도 해외법인을 통한 전략적 접근을 기획하고 있다. 김광태 삼성전자 상무는 “IMF당시 국가이미지와 기업이미지가 동반추락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은 경험이 있다”며 “월드컵 이후 삼성과 코리아의 브랜드를 동반 상승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스타탄생’은 숨죽이며 기다려야 할 시기다. 영국의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는 지난해 100대 브랜드를 꼽으며 국내기업 중 삼성전자만을 포함시켰다. 컴퓨터, 통신장비, 반도체 등 전략분야에 IBM, 인텔, 시스코, HP, 텍사스인스트루먼츠, 애플과 같은 미국계 기업이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스타기업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기업들이 스스로 선도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 뼈를 깎는 자기혁신, 글로벌 문화 도입, 인재확보 등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밖으로는 기업들이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세계로 가지를 뻗을 수 있도록 하는 환경조성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기업이 세계무대에 선보일 최대의 기량을 닦을 수 있는 연습장이 크게 뒤떨어져 있다는 것.
김보수 전경련 경쟁력강화팀장은 “세계에서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포괄적인 경영환경 정비가 필요하다”며 “현재는 기업의 투명성이나 인사문제 등 일부분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른다고 하면서 노사문제, 퇴직금 등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등의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또 “대학교육에서 프로젝트 경험, 경영관련 부문 등 실제 산업현장에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뒤처져 있다”고 덧붙였다.
김한석 KT 경영연구소장도 “기업가정신을 가진 인재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최근에는 삼성이나 KT의 공채에 해외 명문대 MBA 출신이 대거 몰리고 외국인 인재확보도 활발하지만 국내 교육기관의 경쟁력을 강화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다양한 요소의 동반상승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