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결산>달라진 한국IT 위상

 ‘IT월드컵 우승국은 대한민국!’

 전세계 180개국 25억명이 지켜본 가운데 열린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시선이 확실히 달라졌다. 세계 4강 진입으로 국가 인지도가 한껏 높아진 데다 개막식에서부터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선보인 하이테크 기술들로 인해 정보기술(IT) 강국이란 이미지도 한층 확고해졌다. 특히 한국 IT수준에 대한 외국 언론의 소감은 경외감 그 자체다. 공동 개최국인 일본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한국의 IT수준은 세계 최고’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외국 취재단은 인천공항에 내려서부터 호텔과 경기장에 이르는 동안 멀티미디어 공중전화,인터넷PC 등 주변에 펼쳐진 첨단 IT인프라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상암동 주경기장에서 펼쳐진 개막식 행사에서 시연된 비동기식 IMT2000 서비스에 대한 찬사에서 시작된 외국 언론의 놀라움은 10개 월드컵 경기장에 갖춰진 초고속인터넷망을 비롯해 디지털TV 등을 지켜본 한달 내내 지속됐다.

 이는 한국대표팀의 선전과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에 대한 신뢰성으로 이어져 IT부문 한국 브랜드 상승에 톡톡히 기여할 전망이다. 미국·일본 등지에서는 이미 한국산 가전제품들이 고급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해외 경제연구소들 역시 한국이 이번 월드컵 경기와 상관없이 승자라고 밝혔고, 특히 최첨단 시설을 갖춘 경기장 등 IT인프라를 바탕으로 향후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전망하고 있다.

 

 ◇일본=2002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일본에 ‘한국의 4강 신화’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일본인들에게 있어 한국이 흔히 인용돼온 ‘가깝고도 먼 나라’보다는 ‘열정과 기세의 나라’ ‘일본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밀리지 않는 경쟁국’ 등으로 채색되고 있다. 특히 일본 IT업계 관계자들은 새삼스레 ‘IT한국’의 저력을 곱씹고 있다.

 와세다대학 법학과 2학년 기노시타 유야(19)는 IT와 무관한 학생이다. 특별히 ‘한국’도 ‘IT’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난해 12월 첫 외국 여행지로 한국을 선택했다. 사회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기노시타로서는 판문점이 가장 큰 관심의 대상. 하지만 막상 서울에 와서는 한번도 본적없는 ‘PC방’의 엄청난 수에 놀랐다. 기노시타는 종로에 있는 한 PC방에 들어가 일본어 버전을 지원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친구들에게 e메일을 보내며 ‘지금 여기는 PC방이라는 곳’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한국하면 좀 예스러운 분위기를 연상했는데 도쿄와 동시대를 살고있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말하는 기노시타는 이번 월드컵에 비친 한국에 대한 소감에 대해 “한국의 파워를 체감했으며 앞으로 한국산 제품을 볼 때 그 존재감이 더 무거워질 것 같다”고 밝혔다. 일본 소비자들에게 한국이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한 예다.

 일반인들이 느끼는 무게감보다 IT업계 관계자들이 받은 인상은 더 크다. IT관련 전문지인 닛칸코교신문(http://www.nikkan.co.jp) 다카하시 아키시로 기자(37)는 “사실 지금까지 일본이 한국보다는 (모든 면에서) 한수 위라는 인식이 일본인에게 지배적이었으나 한국의 4강 진출로 이런 선입견 깨졌다”고 지적했다. 월드컵을 순수한 스포츠 경기로 한정지어도 일본보다 강한 한국의 이미지는 결정적으로 일본인들의 뇌리에 각인됐다는 것이다.

 “스포츠지는 물론 종합지·전문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이것이 바로 한국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겠는가”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어 “한국은 이미 D램분야에서 일본을 넘어섰지만 (이게 가격에 의한 승리였다면) 앞으로 가격과 함께 기술력에서도 일본보다 앞서나갈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특히 일본과 대등한 경쟁력을 갖춘 IT분야를 중심으로 주변 경제분야도 약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본에 나와 있는 한국 IT엔지니어들의 자부심도 국가 브랜드 제고와 함께 높아졌다. 도쿄 소재 한국 IT인력 모임인 재일한인시스템엔지니어협회(AKOSE http://akose.aoz.jp)의 김우관 회장은 “당장 한국 엔지니어에 대한 평가 상승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적어도 관심은 고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본인 역시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엔지니어이기도 한 김 회장은 “회사 내에서 일본인 엔지니어들과 한국을 화제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늘어나는 등 친근감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8강 진출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축구 얘기하던 일본인 동료들이 막상 한국이 4강까지 올라가자 아마추어 축구 얘기로 화제를 돌리는 등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라이벌 의식도 느낄 수 있었다”는 김 회장은 성장하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계심을 지적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한국 문화상품에 미칠 영향도 관심사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일본 현지사무소 박송희 소장은 “지금까지 일본의 문화산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아직도 88올림픽 얘기를 하곤 했었다”며 “이제부터는 월드컵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매스컴도 한국 음식·영화·음악 등 한국 문화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를 계기로 문화상품의 일본시장 안착을 노려볼 만하다. 적어도 한국 영화·음악·게임을 즐길 가능성이 있는 일본 소비자층이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늘어난 셈이다.

 한편 지난 6월부터 본격적인 일본 액정TV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삼성재팬의 우영섭 전자마케팅 부장은 “월드컵 붐에 따른 국가 인지도 상승과 이에 연동된 삼성제품의 이미지 제고에 대해 얘기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전제한 뒤 “그래도 삼성이 한국 기업인 만큼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을 당장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일본은 월드컵이라는 창을 통해 한국을 보고 듣고 느꼈다. 다카하시 기자는 “한국전이 있을 때는 모두들 모여 빨간 티셔츠를 입고 ‘테-한민구크(대한민국)’를 연호하며 한국을 응원했다”고 말했다. 월드컵은 일본인에게 한국이란 나라의 존재감을 재삼 확인시켜줬다. 그는 “물론 일본 대 한국전이라면 일본을 응원하겠지만”이란 말로 경쟁국으로서의 한국도 잊지 않았다.

 <도쿄=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

 

 ◇미국·유럽=개막식 이후 각 경기의 방송과정 등 월드컵 기간 중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국의 IT인프라를 본 외국 매스컴들은 한국대표팀의 일취월장한 기량만큼이나 한국의 IT기술에 대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회 취재를 위해 방한한 외국기자들은 월드컵 경기보도뿐만 아니라 한국 IT기술을 앞다퉈 보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이 대표팀의 결승진출이 아깝게 좌절됐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의 첨단 IT기술은 세계 만방에 유감없이 소개했다는 점에서 ‘성공작’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외국 언론들은 IT에 높은 관심을 표시했다. CNN은 월드컵 기간 중에 제공된 데이터 중심의 3세대이동통신(cdma 2000 1x EV-DO)을 비롯한 한국의 이통 서비스를 집중 소개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한국 휴대폰이 크기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색상도 다양하다”며 한국 휴대폰의 우수성을 상세히 소개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은 월드컵을 계기로 자국의 하이테크 산업을 집중 부각시킴으로써 IT강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고,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영국의 유수 언론들도 “경제효과로 승부를 거는 월드컵 장외경기에서 일본과 한국간 대결에서 한국이 이겼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외신이 보는 한국 기업들의 위상도 급격히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최근 외신들은 미국과 일본 기업이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한국 기업들이 성장을 거듭하고 월드컵을 계기로 대외신인도가 올라가고 있어 세계 일류 기업군의 위상에 ‘빅뱅’이 예상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세계 IT 100대기업 순위를 매기면서 삼성전자를 1위로 꼽았다. 매출·이익·성장속도·주주 수익 등 지표 전반에 걸쳐 ‘톱10’에 랭크됐다. KT프리텔은 4위에 올랐고 SK텔레콤은 9위를 기록, 작년 160위에서 무려 151단계를 건너뛰었다. 델(5위)·IBM(21위)·마이크로소프트(27위)·인텔(56위) 등 전통적인 미국 IT강호들의 퇴조와 대조적이다.

이에 앞서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500대기업(시가총액 기준)을 선정, 발표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약진에 주목했다. 한국은 전체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는 작년 225위에서 올해 GM·모토로라·HP 등을 제치고 일약 85위로 올라섰다. SK텔레콤(220위)·KT(328위)·한국전력(383위) 등의 상승세도 두드러졌다.

이밖에 파이스턴이코노믹 리뷰는 제3세대 이동통신 초기사업에 고전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 IT기업이 기존 통신설비를 이용한 2.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대중화로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