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로 변한다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CEO의 역할이 더욱 중시되고 있다. 이는 CEO들이 단 한번 의사결정을 잘못해도 회사의 존폐까지 위협할 수 있는 상황까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들어 CEO들은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해야만 하는 압력에 놓여 원가 경쟁력, 고객 서비스, 공급망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보기술(IT)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CEO들은 어떨까. 한국의 CEO들은 IT에 대한 투자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이를 정작 돈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IT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매킨지와 KAIST의 공동 보고서에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3월 매킨지와 KAIST가 공동으로 발간한 ‘한국기업을 위한 IT전략보고서’는 고객관계관리(CRM) 구축을 한국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았다. 상당수의 기업이 거금을 들여 CRM을 도입했지만 돈만 낭비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국내 100대 기업중 금융기관, 제조업체 및 서비스업체 등의 분야의 25개사 CEO와 CI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면접을 통해 실시됐다.
그러나 선진국의 기업들은 CRM 도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신용카드를 주 업무로 하는 미국의 금융회사인 캐피털원이다. 이 회사는 CRM을 도입해 3400만명의 고객(지난해 3분기 기준)에게 개별화된 3400만 가지의 상품을 제공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초고속통신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비록 한국의 IT 인프라는 세계 수준에 이르렀지만 이를 활용한 비즈니스는 고작 온라인뱅킹과 증권거래, 게임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같이 한국기업들의 IT 투자가 실패하고 있는 것은 CEO들이 IT에 대해 막연하게 투자만할 뿐 IT가 상품을 개발하는 수단이 되고 수익을 극대화해주는 도구라고 여기지 않는데 따른 것이다.
또 보고서의 설문결과에 따르면 한국기업들의 IT 관리 수준은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T투자 수준 역시 일본 및 서유럽보다 30% 정도 낮은 수준이며 미국과 비교하면 더욱 낮다. 다만 한국기업들의 IT 투자 성장률이 일본 및 서유럽의 거의 2배 수준인 20% 정도에 달하는 것이 위안 거리다.
또 설문 응답자의 14%만이 비즈니스와 IT전략을 통합시켰다고 답해 비즈니스와 IT전략의 연계가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기업들은 대부분의 IT 조직이 프로젝트 관리 및 IT 운영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아보는 중앙집중식 기능 조직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애플리케이션 부문 투자는 ERP나 CRM 등과 같은 패키지 도입에 집중됐으며 이에 대한 평가는 상반됐다.
매킨지와 KAIST는 한국기업이 IT를 전략화하고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IT조직을 비즈니스 기여도에 맞게 재정비할 것 △CEO를 포함한 주요 경영진이 참여하는 IT조정위원회를 설립할 것 △IT 성과관리 지표를 제도화할 것 등을 제안했다.
한국의 CEO들이 IT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며 IT와 관련해 제대로 된 조언을 받기도 어렵다는 사실은 기업정보화지원센터의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기업정보화지원센터가 최근 국내 대기업 156개, 중소기업 182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 정보화수준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 10개 중 6개, 중소기업은 10개 중 3개 정도만이 CIO의 직제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CEO가 IT에 대해 잘 모르는데 IT와 관련해 CEO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조사에 응한 기업은 대기업이 65.6%, 중소기업이 29.0%였는데 CIO가 없다고 응답한 대기업은 27.3%였고 중소기업은 60.3%였다.
분야별로는 IT가 비즈니스에 필수적인 금융이나 통신업체들은 아무래도 CIO 직제를 도입한 비율이 높아 금융권은 조사대상의 100%가 CIO를 두고 있다고 답했으며 유통·서비스(90.0%), 건설(72.7%), 제조(60.0%) 등의 순으로 도입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CIO가 재무, 기획, 전략 등의 다른 업무를 맡으면서 IT를 함께 책임지는 겸임 CIO들이 많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CIO를 둔 기업 중 전임 CIO를 두고 있는 기업은 대기업의 경우조차 42.3%에 머물렀으며 중소기업의 경우는 고작 12.9%에 불과했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CEO는 어떤 모습일까. e베이의 맥 휘트먼 회장은 “굴뚝기업과 닷컴의 차이는 의사결정의 속도에 있다. 비즈니스 안건 제안, 검토, 결정 등은 1주일 내에 모두 끝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든든한 디지털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HP의 김병두 전무는 이를 위해 ‘디지털 신경망’을 우선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그동안 IT조직이 수십년간 자동화에만 몰두한 결과, ‘호환성이 결여되는 시스템 확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협업이 강조되는 21세기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전무는 또 “‘빠른 인프라’보다는 ‘변경하기 쉬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기업의 경우에는 기차에 비해 약간 느리지만 행로를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는 트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CEO가 인프라의 중요성을 전 직원에게 명확히 인식시키는 것도 중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일례로 미 메릴린치의 경우 IT 인프라 부문에 무려 10억달러를 투자, 자사 직원들이 보다 쉽게 정보에 접근하도록 조처했다. 당시 이 회사의 이사회는 10억달러의 지출을 승인하면서 “프로젝트가 늦춰져 20억달러를 쓰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당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메릴린치는 이같은 결단력있는 IT 투자로 고객에 대한 서비스 품질을 높여 시장 장악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CEO는 개방성, 유연성, 확장성이 뛰어나고 비용을 절감시켜줄 수 있는 IT 인프라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기본이 잘못되면 그에 따른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현대경제연구원 정진철 연구위원이 제시하는 디지털 시대 CEO의 7가지 조건
1. 튀는 CEO가 돼야 한다.
시장은 CEO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며 평가기준은 이전의 성실, 근면한 자세보다는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모습이 되고 있다. 따라서 CEO는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를 강한 기업문화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2.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기존의 경영방식을 고수하면 단기적으로는 안정을 가져올 수 있으나 종국에는 도태의 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에 현명한 CEO는 자사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움을 추구하고 선진혁신 기법을 과감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3. 가치 혁신의 전도사가 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혁신을 위한 추진력과 구성원의 노력을 유도할 수 있는 견인력 모두가 필요하다.
4. 전방위 휴먼 네트워킹을 활용해야 한다.
정보와 지식이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상황에서 CEO는 기업 경영활동과 직접 관련된 사람들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분야의 상이한 계층집단의 사람들과 광대역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해야만 한다.
5. 실천하는 CEO가 되어야 한다.
전문적인 역량을 지닌 CEO 영입에 따라서 기업의 시장 가치가 상승하는 ‘CEO 주가 효과’의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따라서 CEO는 기업 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해야 하며 기업의 전략적 비전이나 핵심 역량 업무성과 등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6. 시장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순간적으로 시장 흐름을 놓치면 경쟁에서 도태된다. 따라서 CEO는 조직 내부 업무에 대해서는 임원들을 활용하거나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해야 하며 이를 위해 관련 전문가의 네트워크 구축이나 전문경영인팀의 활용이 필요하다.
7. 기업과 사회의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
CEO의 이미지가 기업의 주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CEO의 사회 활동은 궁극적으로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한 투자라는 생각이 늘어나게 되었다. CEO는 지역 행사와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참여하거나 종업원의 사회 활동을 적극 지원해 회사가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디지털 시대 CEO의 조건
1. 아이디어: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아마존의 CEO인 제프 베조스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 책을 판매하는 방식을 생각해내 성공했으며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는 1년에 250건의 아이디어를 내놓는 발명가며 새로운 사업모델 개발을 통해 기업의 진화를 추구했다.
2. 스피드:신속하게 판단하고 행동해 기회를 선점한다.
변화에 민감하고 행동하면서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전격적으로 처리되는 것이 다반사이므로 부족한 것은 나중에 보충한다.
3. 프레젠테이션:투명성을 강조하고 설득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기술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고 상대를 쉽게 풀어서 이해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감동적으로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CEO 개인의 능력과 이미지가 기업가치로 직결된다.
4. 파트너십: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과실을 공유한다.
사업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인적 네트워크를 스스로 만들거나 기존 모임에 가입한다. 주변 기업과 다양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해 성공의 과실을 동료 및 직원과 공유한다.
5 편집중:집중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