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위 천장에 매달려 있던 1톤짜리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유령’과 ‘크리스틴’을 태운 배가 무대 위를 미끄러지듯 흐르는 순간, 객석엔 작은 술렁임과 탄성이 일어난다.
가스통 르루 원작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싶은 유혹에 빠져 악마와 계약을 맺은 가난한 작곡가의 사랑이야기. 이 비극적인 드라마는 장엄한 오케스트라와 환상적인 무대미술이 만나 관객을 팬터지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이다.
국내에서도 ‘100억원짜리 뮤지컬’로 유명세를 떨쳤던 ‘오페라의 유령’은 지난달 30일, 7개월 장기공연의 막을 내리며 한국 뮤지컬 역사를 새롭게 장식했다.
한국-브로드웨이 합작으로 제작된 오페라의 공연은 많은 사람들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갖고 바라봤던 것이 사실이다. 워낙 대작인 데다 뮤지컬이 대중화돼 있지 못한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지나친 욕심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우였다. 시연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오페라의 유령’은 2월 28일 100회를 맞도록 매진행진을 이어갔다. 관객만 이어지면 최장 7개월을 공연할 예정이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돼 총 244회 공연에 유료 객석점유율 94%, 총 24만명 관객을 동원했다. 작년 한 해 뮤지컬에 몰린 관객이 총 30만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단일 공연작품이 하나의 공연장에서 거둔 흥행기록으로는 유례가 없는 성공작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다양한 진기록을 낳으며 국내 뮤지컬 역사를 새로 썼다.
준비기간만 1년, 제작비는 무려 100억원이나 들었다. 공연장인 LG아트센터를 7개월간 장기 대관했고 개막 7개월 전부터 신문·방송·옥외광고에 14억원의 광고비를 쏟아부었다.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사전제작비가 50억원이었다. 공연을 위해 브로드웨이에서 날아온 무대 관련 물품이 수출용 컨테이너 박스로 40박스나 됐고 무대설치 공사에만 한 달 반이 걸렸다.
9차례에 걸친 오디션을 열어 주연배우를 선발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최종 매출액도 192억원으로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었다.
결과적으로 ‘오페라의 유령’은 자본과 작품이 결합됨으로써 뮤지컬의 산업화를 이뤘다. 체계적인 조직력을 갖추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가능성이 검증되면서 공연 사업계에 한 획을 그은 것이다.
더욱이 한국 뮤지컬 종사자들이 세계 일류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한 최초의 대작이라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출연진은 한국 배우였지만 리얼리유스풀컴퍼니측이 직접 관여했고 연출·음악·조명·의상·분장 등 대부분의 스탭이 파견돼 제작을 진두지휘한 오리지널 라이선스 공연이었다.
이외에도 ‘오페라의 유령’은 ‘오페라의 유령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동호회가 결성된 것을 비롯, 한국어로 된 한국캐스트 음반과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선보이는 등 다양한 파생효과를 낳았다. 원작소설을 냈던 문학세계 출판사가 ‘만화로 보는 명작 오페라의 유령(전 3권)’을 낸 것도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