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애플턴 마이크론 회장(CEO)이 ‘EE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하이닉스반도체와 재협상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하이닉스 처리 방향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4월말 하이닉스 매각안이 부결된 뒤 정부와 채권단이 줄기차게 해외 재매각을 주창하면서 보낸 ‘러브콜’에 비로소 ‘화답(和答)’이 온 것. 이 때문에 양측은 조속히 협상 테이블을 마련, 재회(?)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애플턴 회장의 이같은 발언 뒤에는 연속 6분기 적자라는 마이크론의 최악의 경영상황이 깔려있는 데다 하이닉스 소액주주와 노조, 채권단 등 각 주체가 여전히 매각에 대한 입장이 달라 또다시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재협상 발언배경=애플턴의 이번 발언이 단순한 돌출행동이라기보다는 사전에 짜놓은 각본에 따라 수순을 밟은 것이라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미 정부와 채권단 사이에 충분한 논의가 오갔다는 것.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 금융자문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물밑접촉을 갖고 재협상 추진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왔다는 후문이다.
더욱이 채권단은 출자전환 이후 채권단 출신의 CEO와 CFO를 투입, 이사진을 재구성하면서 재협상을 위한 정지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를 실사중인 도이체방크와 모건스탠리 역시 중간보고를 통해 매각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협상 결렬후 두달이 지난 시점에서 재협상 의사를 밝힌 것은 오히려 마이크론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발표한 2002년도 3분기(3∼5월) 실적 집계에서 2420만달러의 적자 등 연속 6분기째 적자에 시달려온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것. 여기에 삼성전자와 인피니온을 비롯, 대만의 난야 등이 앞다퉈 300㎜ 웨이퍼 투자, 256M DDR SD램 증산 등 차세대 투자와 생산량을 늘이는 등 마이크론을 앞질러가고 있는 상황이다.
또 협상 당시 40달러에 육박하던 마이크론의 주가가 20달러 초반대로 떨어지는 등 주가관리를 위해서라도 마이크론으로서는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 다시 하이닉스 인수를 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반응과 전망=채권단과 정부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실사가 진행중인 데다 오는 24일로 예정된 하이닉스 임시주총을 통해 새 이사진을 앞세워 실사 결과에 따라 구조조정 방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외부 자문기관의 실사 결과가 재협상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면 양측의 협상은 급류를 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채권단은 재협상이 진행될 경우 가급적 1∼2개월내에 신속히 매듭짓고 300㎜ 웨이퍼 투자 등을 집행해 실기를 하지않겠다는 입장이다. 마이크론 역시 하이닉스 못지 않게 다급한 상황이어서 비교적 결론이 빨리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양측이 서둘러 재협상에 착수한다고해도 현실적인 장애가 만만치 않다는 게 하이닉스 주변의 분석이다.
앞서 애플턴 회장이 협상결렬을 선언하면서 밝힌 것처럼 ‘채권단과 이사회, 주주 등 여러 이해당사자들과의 갈등’이 여전히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마이크론의 주가가 20달러대에 머물고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또다시 △주가산정 기준일 △신규자금 지원 △부채탕감은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매각조건을 둘러싼 헐값시비도 재현될 공산이 크다. 1차협상 때의 인수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1억860만주로 규정된 매각대금은 ‘반토막’으로 줄어든다.
소액주주들과 노조의 매각반대는 불보 듯 뻔하다. 잔존 법인의 생존방안과 고용승계는 물론, 반도체값이 다시 상승하는 추세를 들면서 노조와 소액주주들은 다시 저지운동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이밖에 PC업체가 D램 업체들의 담합을 막기 위해 진행중인 반독점 조사도 결정적 난제로 작용, 양사의 협상은 또다른 험로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