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발효된 개정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자칫 ‘무한책임’을 떠안을 뻔 했던 전자지불대행(PG)업계가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에 힘입어 숨통이 트이게 됐다. PG업체들은 지난 수년간 카드사와 온라인 쇼핑몰, 소비자들의 틈바구니속에서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지만 사실 전자상거래 시장 활성화의 숨은 공신이다.
정부와 업계는 8일 각계 대표자들이 참석한 회의 결과 PG업체들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할 우려가 있는 현행 신용카드사 특약관행을 고쳐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표준계약서를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의 중재로 신용카드와 PG업계 대표들은 전담팀을 구성, 이른 시일 내에 표준계약서를 내오기로 했다. 이에 따라 권익 사각지대로 내몰리던 PG업체들은 정부의 이번 중재 결과를 크게 환영하는 한편, 개정 여전법이 보장한 법적 지위와 불공정 가맹점 약관의 시정이라는 소득을 동시에 얻게 됐다.
◇여전법의 쟁점사항=신용카드사와 PG업체의 가맹점 약관은 그동안 불평등 계약이라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지만 개정 여전법은 이를 더욱 부채질할 소지를 안고 있다. 핵심 쟁점조항은 시행령 제6조 9에 신설된 PG업체의 준수사항. 제1항은 PG업체가 하위 쇼핑몰의 신용정보·거래대행 내역을 신용카드사에 제공토록, 2항에서는 PG업체가 실제 구매고객에게 쇼핑몰의 상호·주소를 열람토록 각각 규정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조항은 카드사와 PG업체의 책임분담 범위를 명시한 제3항. 법령은 배송사고나 물품하자 등으로 인한 주문취소·환불 책임을 PG업체가 부담토록 함으로써 PG의 책임범위를 포괄적으로 잡고 있다. 이로 인해 인터넷 쇼핑몰에 도난·분실카드가 사용될 경우도 PG업체가 고스란히 책임을 떠안을 소지가 있다. 현재 오프라인 거래에서는 도난·분실카드 사용시 가맹점이 본인 확인을 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카드사가 책임진다. PG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용카드사의 거래승인 이전단계에서 단지 결제만을 대행하는 PG업체가 일반 가맹점보다 오히려 더 무거운 부담을 지는 결과”라며 “해석에 따라 온라인 사고 발생에 따른 전적인 책임을 떠 안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특약서, 현대판 불평등조약=신용카드사들은 PG업체와 일종의 특약 형태로 가맹점 계약을 맺고 있다. 카드사들이 비판받고 있는 대목은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하고 있거나 PG업체들의 영업범위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현행법상 PG업체들은 카드사와의 계약에 의해 온라인상에서 카드본인 확인방법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오프라인 가맹점에서 매출전표의 서명 확인으로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자상거래시 부정거래가 발생할 경우 PG업체는 본인확인을 하지 않았다며 카드사로부터 전적인 책임을 전가받고 있다. 국민카드·동양카드·비씨카드 등 상당수 카드사는 현재로선 유일한 본인확인 방법인 인증서비스도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그렇다고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인터넷 쇼핑몰이 아닌 통신판매·방문판매업체를 하위 가맹점으로 가입하지 못하도록 PG업체의 발을 묶는 행위도 드러나고 있다. 국민카드와 동양카드 등이 대표적 사례.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법적 지위를 보장받기 이전에도 이미 통신판매 및 방문판매업체들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면서 “영업범위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PG업체들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꿈쩍않던 신용카드사들이 이날 회의결과를 일단 존중하고, 기존 특약서를 고치는 식으로 PG업체의 책임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특히 각각 PG업계와 신용카드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전자지불포럼 및 여신전문금융업협회는 정부의 중재 결과에 공감대를 갖고 앞으로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기로 했다. 이번 회의를 주재한 중소기업특별위원회 관계자는 “개정 여전법의 틀안에서 양측이 적정한 수준으로 책임을 분담토록 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