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 진해지는 법이다. 산업혁명을 통해 해가 지지 않는다는 제국을 건설한 영국의 그늘 속에서는 소외받는 노동자들과 식민 국가들이 있었다. 유비쿼터스 혁명도 마찬가지다. 저절로 유토피아가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유비쿼터스 혁명은 엄청난 지각변동과 공간구조의 중첩을 불러온다. 과거의 공간구조를 지배하던 질서체계도 급격히 변화한다. 제3공간으로 인해 새롭게 드리워질 그림자는 21세기의 근본적인 대응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정보화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많은 문제점을 불러왔다. 정보화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정보격차(information divided)다. 정보화가 급진전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문맹자와 같은 처지로 전락했다. 컴퓨터를 두려워하는 컴맹과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넷맹은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가 된다. 이러한 정보 소외자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에 비해 30% 이상 낮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조사된다.
국가 차원의 정보격차는 개인 차원의 정보격차에 비해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아직까지 초고속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 전체 60억 인구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국가의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한 국가의 노동자에 비해 10배에서 100배의 임금을 받는다.
정보가 공간 속으로 스며드는 제3공간에서의 정보격차는 곧바로 공간격차(space divided)로 연결된다. 따라서 제3공간에 거주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100배 이상의 임금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유비쿼터스 혁명으로 초래될 공간격차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시와 농촌간 격차만큼이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것이다. 공간의 격차는 한쪽에는 선순환을 가져오는 반면 다른 한쪽에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센서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된 u-도시는 평온하고 지능적이며 생산적인 공간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은 u-도시로 몰려든다. 산업사회에서 농촌이 공동화됐듯이, u-도시와 기존 도시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이다.
제3공간에서의 삶에 익숙해질수록 제3공간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중독자도 늘어난다. 인터넷 중독으로 건강한 생활이 파괴되듯이 제3공간 중독도 공간세계의 왜곡과 오염을 불러올 것이다. 놀이방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PC방과 노래방에서 청소년기와 장년기를 보내는 우리 민족에게 불건전한 공간에의 중독증은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그래서 제3공간의 윤리는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요구된다. u-아파트나 u-도시를 조성할 때 불건전한 공간을 규제하고 청정공간을 의무화하는 제도 마련이 필수적이다.
정보화로 공간의 벽이 사라지면서 개방화와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세계화는 공간을 개방시키기도 했지만 외부 환경의 영향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지구의 한쪽 끝에서 벌어진 금융사고의 여파가 국내 경제시스템을 흔들곤 한다. 이에 반해 유비쿼터스화는 공간의 벽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의 연결은 강제가 아니라 선택이다. u-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표준형 센서를 사용할 것인지 고유한 센서를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표준형 센서를 사용하는 경우 외지인들도 u-도시의 시민들과 유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반면 고유한 센서를 사용하면 u-도시의 시민들만이 고급스러운 공간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제3공간의 표준화를 어느 수준까지 강제할 것인지, 제3공간을 어느 범위까지 사유재로 인정하고 어느 범위까지 공공재로 강제할 것인지의 문제는 앞으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올 것이다. 그 결정에 따라 제3공간의 시장판도와 정책구도가 바뀌기 때문이다.
모든 컴퓨터가 인터넷에 연결돼 정보의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과거에 만연하던 부패의 그림자도 빠르게 걷히고 있다. 그러나 정보의 투명성은 반쪽 투명성일 뿐이다. 정보에 대응한 사물의 투명성이 확립될 때, 비로소 사회 전체의 투명성도 완성된다. 정보의 투명성은 장부상의 투명성에 불과하다. 제3공간의 창고에서 상품이 출하될 때, 상품에 식재된 태그는 회계장부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달라고 신호한다. 제3공간에 등록돼 그 흐름이 투명하게 노출된 사물을 뇌물로 사용할 수는 없다. 결국, 제3공간에서는 사물과 정보간의 일치를 통해 정보는 물론 사물의 투명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회 전반의 부패는 사라지고 제3공간 속에서 사회적 신뢰는 올라간다.
공간의 투명화는 어둠 속의 부패를 제거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축소시킬 위험도 안고 있다. 제3공간에서는 개인의 모든 것이 직·간접적으로 인터넷에 연결된다. 주방의 전기밥솥에서부터 화장실의 변기까지 모든 것이 연결된다. 지금은 컴퓨터에 저장된 디지털 정보에 대한 보안이 문제지만, 제3공간에서는 개인의 모든 정보가 해킹에 노출된다. 개인의 정보뿐만 아니라 사물까지도 침해당할 우려가 있다. 인터넷과 센서네트워크를 통하여 옆집의 냉장고 찬거리와 주방기구를 원격가동시켜 한 상 차려 먹을 수도 있다. 제3공간에서 해커는 컴퓨터만이 아니라 개인의 사적인 공간에까지 침입하는 셈이다. 제3공간에서의 사이버테러는 말 그대로 물리 공간과 사물 그리고 육체에 대한 테러를 포함한다. 제3공간에서는 개인이나 기업과 국가의 정보보호를 뛰어넘어 공간보호가 요구된다. 제3공간에서의 해커는 공간 침입자와 마찬가지로 강도 높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근대화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는 압축성장으로 요약된다. 200년 걸린 산업화를 20년만에 달성했으며, 정보화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수행했다. 그러나 압축성장은 다른 한편의 희생을 불러왔다. 개인과 지역에 따른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다. 유비쿼터스 혁명 역시 새로운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희생이 요구되는지를 미리 파악해 그 희생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어진다고 해서 빛을 약하게 만들 수는 없다. 오히려, 더 강력한 빛으로 그림자의 영역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그림자는 정오에 가장 짧아진다. 제3공간과 유비쿼터스의 강력한 빛이 모든 사람과 공간 위에 비춰질 때, 제3공간의 그림자는 가장 짧아질 것이다.
<공동집필>
하원규 ETRI 정보화기술연구소·IT정보센터장 wgha@etri.re.kr
김동환 중앙대·공공정책학부 교수 sddhkim@cau.ac.kr
최남희 국립청주과학대·행정전산학과 교수 drnhchoi@cjnc.ac.kr
◆제3공간의 소외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개의 이데올로기를 탄생시켰다. 산업혁명이 약속한 풍요는 자본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낳았다. 이에 반해 산업혁명이 초래한 소외는 공산주의에 대한 동경을 잉태했다. 생산설비를 소유한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소외현상이 확산되면서 이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모든 생산설비를 국유화하는 공산주의가 제안됐다. 노동자에 대한 소외는 경제와 정치를 연결시키는 뇌관이었다.
착취와 소외는 생산설비의 일방적인 소유에 의해 발생된다. 농장을 소유했던 지주는 소작농을 착취했으며, 공장을 소유했던 자본가는 노동자를 소외시켰다. 이런 가운데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정보화는 소외의 역사에 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보화에 따라 육체노동자에 비해 지식노동자들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했으며 이들 지식노동자는 스스로 생산설비를 소유하고 있었다.
지식노동자들은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프린터 등 지식을 생산하는 설비를 스스로 소유하거나 지배한다. 생산설비를 지배하는 지식노동자는 더 이상 자본가에 의해 착취당하지 않을 것으로 성급한 학자들은 낙관했다. 재택근무, 평생직업, 프리랜서 등의 화려한 이름과 함께 노동자의 유토피아가 등장할 것으로 보았다. 더 나아가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식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견도 있었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맞이한 지식노동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지식노동자들은 24시간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해고의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정보화가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소외가 목격되기 시작했다. 지식 생산설비를 소유한 지식인들은 지식을 유통시킬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다. 생산된 지식과 정보를 유통시킬 수 있는 미디어가 지식인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편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지식인들보다 유통망을 지배하는 포털사이트가 더 중요하게 부각됐다.
제3공간 시대에도 소외는 발생한다. 미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제3공간 시대에는 생산설비나 유통수단이 아니라 소비공간이 소외의 원천으로 작용할 것이다. 제3공간을 지배하는 자에 의해 전면적인 소외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제3공간은 절망보다 큰 희망을 약속한다. 착취와 소외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겠지만 그 참혹함과 가혹함은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다. 산업사회의 착취가 농업사회의 그것보다 참혹하지 않았으며, 정보사회의 소외가 산업사회의 그것만큼 가혹하지 않았다. 제3공간의 소외를 어떻게 부드럽고 가볍게 만들 것인가는 지금부터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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