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26)노동자 로봇.

 10년 된 낡은 신문더미에서 과거 로봇기사를 뒤지다보면 낯익은 기사제목에 가끔 놀라게 된다.

 ‘삼성전자 무인청소로봇 개발’ ‘지능을 지닌 로봇 등장’ ‘꿈같은 로봇세상 현실로’. 시간이 있다면 한번 직접 찾아보시라. 첨단로봇의 개념조차 명확지 않던 시절이지만 당시 언론매체가 표현하던 로봇이 지배하는 미래세상의 모습은 주변 기술환경이 크게 달라진 현재의 상상력과 비교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시절에도 로봇관련 과학기사의 기본적인 논조는 한결같이 기술발전에 의한 노동해방, 로봇이 생산활동을 대신하는 ‘노동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21세기가 되면 로봇이 청소와 빨래 등 온갖 허드렛일을 대신하고 직장에서 일자리까지 빼앗아갈 것이다. 로봇기술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적어도 현재까지 생산라인에서 노동자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로봇에 의한 노동해방이 실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10년이 지났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청소로봇을 개발중이고 인공지능을 구현했다는 휴먼로봇들은 아직 대학연구실에서 초보적인 문법체계를 익히느라 헤매고 있다.

 그동안 로봇의 기술발전이 정체된 걸까. 아니면 로봇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너무 앞서간 것인가. 사실을 말하자면 지난 10년간 로봇산업은 급성장한 IT를 바탕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분야에서 일정부분 성과를 거뒀지만 아직도 대중의 기대치에는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다.

 꾸준한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공장생산라인에서 산업용로봇의 역할은 그다지 확대되지 못했고 가정주부들은 디지털화된 첨단 가전기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사노동이 고되다고 불평한다.

 자동화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종말’은 그리 쉽게 오지 않을 듯하다. 우선 편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는 한도가 없기 때문에 자동화의 전후를 비교해서 개인이 느끼는 노동의 강도는 별반 차이가 없다. 쓸 만한 청소로봇이 나왔다고 해서 주부들이 스스로 가사일이 편해졌다고 인정할 성 싶은가. 로봇은 사람이 힘들고 귀찮은 일을 부분적으로 대신하는 노예일 뿐 인간이 노동으로 간주하는 업무영역(자동화로 인해 조금씩 줄겠지만)을 본질적으로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노동자계층은 로봇자동화가 가져올 실업문제에 대해 필요 이상의 경계심을 갖고 있다. 자동화기술을 노동시장의 불안과 동일시하는 전망은 산업화 초기부터 있었다.

 19세기 초반 기계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직물공장에 들어가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기술적 진보와 이에 따른 리스크를 기꺼이 수용한 영국은 이후 한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했다.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로봇기술을 배척한다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

 일부 유럽국가에선 불과 반세기전까지 경운기, 트랙터조차도 농촌에서 일꾼들의 몫을 빼앗는 고약한 자동기계로 간주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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