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의 수장이 바뀜에 따라 정보통신 정책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책 자체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나 ‘도전적인’ 신임 장관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업계 안팎에선 ‘앞으로 어떤 스타일의 장관이 와도 흔들림 없는’ 정책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상철 정통부 장관이 짧은 임기나마 곧 맞닥뜨리게 될 문제들과 이를 풀어가는 데 있어 필요한 기본원칙들을 5회에 걸쳐 짚어본다.
1.정책 로드맵을 짜자
이상철 신임 장관은 전임 장관들에 비해 정보통신 정책과 기술, 경영 모두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통신업계에선 그의 장관행에 대해 우려보다 기대가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신임 장관에게 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눈치다. 지난 94년 말 정통부가 출범한 이후 장관의 평균 임기는 1년 1개월. 장관들은 장기적인 미래 비전 아래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기 보다는 단기적인 ‘업적’을 쌓는 데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정권 말기에 입각한 이 장관은 역대 정통부 장관 중 가장 임기가 짧을 가능성이 높다.
김석기 고려대 교수는 “신임 장관은 새 정책을 입안하기 보다는 기존 정책 기조가 흔들리지 않도록 일정을 수립하고 이를 꾸준히 실천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남용 숭실대 교수도 “유효 경쟁, 구조조정, 비대칭 규제 등 현 통신정책 기조는 큰 틀에서 보면 바람직하다”면서 “신임 장관이 틀을 바꾸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이를 언제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책은 있으나 실천이 없다는 게 더욱 큰 문제다. 처음엔 요란하게 떠들다가도 의사결정권자나 실무자가 바뀌면서 자취를 감추는 정책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마디로 사후관리가 없다.
정통부는 통신 3강 구도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왔으나 결과는 기존 양강 구도의 고착화로 나타났다. 한 후발사업자의 임원은 “통신 3강 정책이 말만 요란했지 세부정책은 상황 논리와 업계 로비에 흔들렸던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IMT2000 사업 역시 선정 때부터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혼선과 잡음을 빚더니 정작 선정이 완료되자 서비스 연기론이 나오고 있다.
장관을 포함한 정통부 정책 관료들의 잦은 교체도 문제다.
99년 10월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며 시도된 인터넷PC 보급 정책은 언제라고 할 것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대기업의 가격 공세 등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도 크나 당시 이 정책을 주도한 국장급 이하 주무 공무원의 교체도 영향이 컸다는 평가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도 의장이 바뀌면 정책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다. 정책 결정자의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FCC는 큰 틀의 정책을 바꾸면 안정성을 해칠 수 있어 어떻게든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장관이나 실무 관료가 바뀌면 정책도 달라지는 우리와 대조된다.
전문가들은 그 대안으로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책 수립의 마스터플랜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통부의 정책 수립 과정을 보면 사무관 이하 실무자가 입안해 과장에서부터 장관으로 이어지는 단선구조로 돼 있다. 물론 다른 부처에 비해 비교적 활발하게 내부 논의도 갖고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의견수렴의 양은 ‘천양지차’다. 심지어 관료가 미국이나 유럽 중 어디에서 연수했느냐에 따라 접근방식도 다르게 나타날 정도다.
이점에서 최근 정통부가 통신역무 체계 개선의 초기 논의를 공개한 것에 대해선 후한 점수를 주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가 언제, 어떤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향후 일정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른바 ‘정책의 로드맵’이다. 그래야만 ‘왜 추진하는 지’에서부터 ‘어떻게 해야 실효를 거두는지’까지 논의가 활성화되며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수시로 실무자가 바뀌어 전문성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로드맵을 짜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봇물을 이루는 통신산업의 변화를 정책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염용섭 KISDI 통신방송정책연구실장은 “우리도 정책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구조를 정착시켜야만 정책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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