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 왜 위기인가-각종 비리게이트 연루로 신뢰 추락

 벤처기업, 벤처집적시설, 벤처캐피털 등 벤처산업 전반의 구성요소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해 5월 이후 일어난 코스닥시장의 급격한 위축, 이어서 각종 벤처게이트 등이 터지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들 벤처경영에 직간접으로 미치는 요인들은 벤처를 ‘신경제의 주체’에서 천덕꾸러기로 바꿔놓았다. 벤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코스닥 진출과 투자유치가 어려워지고 한때 벤처라는 이름에 몰려들었던 인력의 유출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현황=벤처기업수는 코스닥시장이 붕괴되기 직전인 지난해 4월 1만개를 넘어서며 최고조에 달했다. 이후 설마 하는 기대감 속에서 연말까지 꾸준히 증가하던 벤처기업수가 지난해말을 기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려 1년 2개월 만에 다시 1만개 이하로 감소했다. 신규창업이 줄어든 것은 물론 기존 등록된 벤처기업마저 벤처라는 울타리속에서 벗어나려는 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부실벤처를 걸러내기 위해 중기청이 실사를 통해 10∼20% 가량을 강제 퇴출시키기로 한 것은 벤처 경영여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대형건물의 최첨단 공조시스템을 구축하는 A 벤처기업의 사장은 “벤처지정을 통해 얻는 것보다는 벤처라는 이유로 주변에서 받는 질시의 눈초리가 더 힘들게 느껴진다”며 “얼마전 벤처인증서를 찢어버렸다”고 말한다.

 벤처집적시설, 벤처캐피털도 마찬가지다. 벤처캐피털업계에서는 최악의 경우 50∼60여개의 회사만이 현재의 침체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서슴지 않는다. 어느새 벤처캐피털업계에는 수익을 거두는 것보다 생존이 더 큰 과제로 던져지고 있다.

 ◇문제점=벤처기업들은 지금 삼중고를 겪고 있다.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되면서 이미지가 바닥에 떨어졌으며 코스닥시장 침체로 투자유치도 힘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IT경기마저 아직 바닥에 머물고 있다.

 벤처관련 비리사건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끊임없이 내사설이 흘러나오면서 업계 분위기는 급랭하고 있다. 이는 이미지 추락에 그치지 않고 투자유치 및 우수인력 확보에 직접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벤처업계에서는 인력이탈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연구, 재무담당 등의 핵심인력 누수현상이 심하다. 임금수준과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대체인력 구하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투자유치도 어렵다. 코스닥 등록기업이나 매출기반을 갖고 있는 업체들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 벤처캐피털들이 투자기업 선정시 매출액 상위기업, 제조형 벤처, 수출기업 등의 단서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1만개의 벤처인증기업 중 창업 3년 이하인 기업이 50%를 차지하고 있어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대부분 업체들이 투자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총체적인 난국이 벤처를 외면하게 만들었고 벤처업계의 수치적인 감소가 그 현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과제=벤처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선순환고리가 파괴됐다는 점이다. 그 출발은 코스닥시장에서부터 시작됐다. 코스닥시장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벤처기업들의 성공신화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벤처캐피털 또한 투자회수가 불투명해졌다. 때문에 우수인력의 벤처유입, 신규창업, 투자유치 등 모든 여건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벤처산업의 전반적인 침체원인은 정부당국은 물론 벤처업계 종사자조차 진정한 벤처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같은 빗나간 이해 속에서는 만들어지는 대안들은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코스닥시장의 수급불균형을 등록심사 강화에서 찾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그동안 진행된 중기청 등 정책당국에서 내논 해결책들은 현안에서 비껴간 잔가지만을 건드렸다. 벤처기업 프라이머리CBO 등 무차별적인 자금지원, 각종 정부단체가 경쟁적으로 진행한 사정, 벤처캐피털의 로크업, 대주주 지분변동 제한 확대 등의 미봉책이 오히려 벤처업계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비록 위축돼 있지만 벤처산업은 국가산업기반을 탄탄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다. 따라서 높은 코스닥시장 진출의 벽을 허물고 ‘진입은 쉽고 퇴출은 강력하게’ 해 파괴된 선순환고리를 이어줘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