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방식(ATSC)을 기반으로 이미 상용서비스를 전개중인 디지털지상파방송을 놓고 일부에서 유럽방식(DVB-T)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방식이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핵심 전송기술을 수정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경우 유럽방식은 우리나라의 방송정책이 전략목표로 설정한 고선명(HD)TV 전송에 부적합할 수밖에 없어 디지털지상파 국가표준을 둘러싼 국내의 논란 역시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확실시되는 DVB-T규격의 변경=지난 4일 영국 방송·통신정책기구인 ITC는 지난 5월말 파산한 ITV디지털의 주파수를 재활용한다는 차원에서 주파수를 신청한 6개 사업자중 BBC·크라운캐슬(Crown Castle)에 디지털지상파 사업권을 재부여했다. 문제는 6개 사업권 신청사중 BBC와 크라운캐슬을 포함한 5개사가 제안서에서 DVB-T규격의 핵심요소인 전송방식 변경을 ITC에 요구했다는 점이다.
ITV디지털이 채택한 DVB-T 표준규격의 전송방식은 64QAM(Quadrature Amplitude Modulation)이었으나 새로운 사업자들은 16QAM방식으로 전환해 서비스하겠다는 것이다.
ITC는 이에 BBC와 크라운캐슬이 디지털지상파방송서비스에 들어갈 수 있도록 16QAM 방식으로 변경해줄 의향이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DVB-T규격의 전송방식이 64QAM에서 16QAM으로 변경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치명적 한계를 지닌 DVB-T=유럽의 디지털 지상파방송표준인 DVB-T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지상파방송사업자이자 최초의 DVB-T규격 채택기업인 ITC디지털을 파산케 한 주요한 요인을 제공했다. ITC나 사업권을 획득한 BBC 등은 ITV디지털이 채택한 64QAM의 기술적 문제를 인정하고 있다.
BBC는 ITV디지털이 채택한 64QAM 전송방식은 목표치를 밑도는 방송수신율(40%)은 물론 수신가정의 50%가 전파간섭(노이즈 등)의 영향을 받는 등 수신도에 치명적 문제를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BBC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송모드를 64QAM에서 16QAM으로 바꾸고 송출파워를 2배로 늘려야 한다고 제시했다.
◇64QAM과 16QAM의 차이=ITV디지털이 채택한 64QAM과 BBC가 제안한 16QAM은 데이터전송률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64QAM 전송방식은 8㎒ 주파수대역을 한 채널로 하는 DVB-T규격에서 데이터전송률을 24Mbps를 유지케 하나 16QAM방식은 18Mbps를 제공케 한다. 데이터전송률을 떨어뜨려서라도 수신율을 제고하겠다는 발상이 BBC의 16QAM 전송방식 채택이었다. 이 경우 아날로그 1개 채널인 8㎒ 주파수대역을 6개의 SDTV급 디지털채널로 쪼갰던 ITV디지털과 달리 같은 주파수 대역에서 4개의 채널로 줄어든다.
◇유럽방식의 한계=DVB-T규격이 16QAM 전송방식으로 변경된다는 사실은 유럽표준이 우리나라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가 HDTV전송을 채택한 상황에서 이같은 유럽식 규격은 더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HDTV전송을 위해서는 채널당 19.3Mbps의 데이터전송률이 요구되는 데 반해 16QAM은 8㎒대역을 기준으로 18Mbps만 제공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6㎒ 주파수대역을 하나의 디지털채널로 활용하기 때문에 16QAM을 채택한다면 데이터전송률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6㎒를 한개 채널로 하는 우리의 상황에서 16QAM 전송방식을 채택한다면 데이터전송률은 14Mbps로 떨어지기 때문에 HDTV전송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만약 유럽처럼 SDTV 채널전송을 위해 디지털전환을 한다면 가능성이 있지만 HDTV전송을 디지털전환의 주요한 이유로 한 상황에서는 DVB-T가 의미를 잃을 수밖에 없게 됐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