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97년을 살아오면서 음악가로서 카잘스만큼 위대한 메시지를 전한 사람은 없다. 작곡가요, 지휘자요, 그리고 뛰어난 첼리스트이기 전에 그는 우리의 따뜻한 이웃이요, 세계 평화를 추구한 위대한 철인이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카탈로니아인의 긍지를 갖고 살아온 참된 애국자, 억압당하고 핍박받는 동족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던 한 인간, 그리고 파시즘에 항거하던 불굴의 의지로 점철된 그의 기복 많은 생애는 너무나 극적이어서 한순간 한순간마다 감동을 일으킨다.” <나의 기쁨과 슬픔, 파블로 카잘스 전기 머리말 중에서>
한 평생 첼로만을 연구하고 사랑했던 첼로의 성인, 파블로 카잘스. 그만큼 세인의 추앙을 받는 이도 드물다. 그의 일생동안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일까, 그를 ‘잔인한 대학살로 얼룩진 20세기를 인간이 견뎌낼 수 있도록 신이 내려준 축복’이라고 묘사하는 것도 지나친 비약으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이런 파블로 카잘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음반기획사인 굿인터내셔널은 97년부터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과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 ‘카잘스 트리오’ ‘파블로 카잘스-첼로 협주곡집’ ‘바로크 페스티벌’ ‘카잘스 소품집’ 등 카잘스의 대표작을 묶어 11장의 파블로 카잘스 전집을 내놓았다.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카잘스 전집이 선보이기는 이번이 처음. 대부분이 20∼30년대에 녹음된 기념비적 음반이라는 점에서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을만 하다.
‘카잘스 트리오’는 1905년부터 35년까지 인기를 모은 삼중주단 가운데 하나였던 카잘스 트리오의 대표작. 자크 티보(바이올린), 알프레도 코르토(피아노)로 이뤄진 이 전설적인 트리오는 전성기인 26∼28년 사이에 녹음한 몇 안 되는 음반이다. 2장의 음반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7번 대공’과 슈만·슈베르트·멘델스존의 ‘피아노 3중주 1번’ 등 모두 4곡의 피아노 삼중주가 실렸다.
‘파블로 카잘스’는 엘가 등 3곡의 첼로 협주곡과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2번’ 등 5곡으로 구성돼 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은 티보가 바이올린, 코르토가 지휘를 맡아 트리오의 저력을 들려준다. 첼로 협주곡의 최고봉이라 할 드보르작의 협주곡은 작곡자가 사랑해마지않던 조국 체코의 프라하에서 녹음됐다.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는 마치 칼로 연주하듯 음영을 날카롭게 도려내는 연주가 일품이다. BBC심포니와 함께 하는 엘가의 협주곡도 스케일이 크고 음영이 짙다.
바로크시대의 대표 작곡가들의 소품을 모은 ‘바로크 페스티벌’은 카잘스의 수많은 명연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특히 카잘스가 일생의 목표로 삼았던 바흐 연주는 어떤 곡이건 깊은 맛을 전하며 비발디나 타르티니도 무겁고 슬프다.
대비를 장식하는 ‘카잘스 소품집’은 카잘스라는 연주인은 차치하고라도 가슴 설레는 레퍼토리로 가득차 있다. 15∼28년 사이 카잘스가 녹음했던 29곡이 모두 담겨 있다. 헨델 오페라 ‘세르세’ 중 ‘라르고’,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등이 그것.
73년 9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시도 음악으로 세상에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휴머니스트 파블로 카잘스. 그가 건네는 이 전집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푸짐한 선물꾸러미다.
굿인터내셔널 발매. 문의 (02)921-8781.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