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토탈리콜’ 등을 쓴 필립 K 딕은 미래세계를 가장 통찰력있게 보여주는 작가 중 하나일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미래는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하이테크놀로지에 의해 작동되고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하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앤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사회다. 딕이 미래를 제시하는 방식은 여느 SF작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미래에 대한 차갑고 비관적인 시선은 그만의 독특한 음영을 드리운다.
딕의 단편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올 여름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라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바쁜 두 사람에 의해서 펼쳐진다. 이미 ‘ET’와 ‘미지와의 조우’를 통해 SF동화를 들려주었던 스필버그는 큐브릭의 프로젝트였던 ‘A.I.’를 통해 동화의 이면에 놓여있던 잔인함과 슬픔을 연출하더니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이르러 상처받고 누명 쓴 어른의 이야기를 어둡게 끌어간다(물론 귀결은 여전히 스필버그적이다). 톰 크루즈는 아들을 잃은 후 아내도 떠나버려 약물에 의존하지 않으면 잠들지조차 못하는 황폐하고 불행한 인물을 맡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를 예견하는 예지자들의 보고서에 의해 미래에 일어날 범죄를 미리 예방하고 범죄자를 격리하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를 다룬다. 이 시스템은 범죄 없는 사회의 도래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지만 범죄가 성립하기 직전 이를 제압하거나 차단함으로써 시스템 자체의 존재성에 대한 논란을 잉태한다. 사실 이같은 논란은 예정설과 자유의지론에 대한 오랜 논쟁을 떠올린다.
물론 이 영화에서 이 문제가 심도있게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의 희생자가 될 운명에 처한 인물이 다름 아닌 프리크라임 팀장(톰 크루즈)이고 그의 자유의지가 예견된 미래를 조금 수정하게 함으로써 자유의지론의 손을 들어주지만 이 영화의 기본적 관심은 시스템의 수호자에서 희생자로 돌변한 한 남자의 드라마틱하면서 황폐한 삶, 그리고 살인과 폭력의 끔찍한 영상을 영원히 볼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을 걸머진 예지자에 대한 연민에 있다.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누아르(noir)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만들고자 한 것처럼 영화는 범죄와 범죄를 쫓는 수사관·탐정의 구도, 음모와 배신, 베일에 가려진 사건과 추적극 등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스필버그식 누아르는 필름 누아르의 환멸에 가득찬 어두움과는 달리 현란한 어두움을 선사한다. 마찬가지로 톰 크루즈는 필름 누아르의 영웅 험프리 보거트의 허무적인 냉소를 따라잡기에는 너무 화려한 이미지를 가졌다. 게다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특히 예지자에 대한 처리는 누아르의 어둡고 비관적인 세계관과는 지향점을 달리해 스필버그적 동화의 세계로 침잠하는 이 영화의 정서를 환기하게 한다.
<영화평론가, 수원대 교수 chohye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