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름이 시작됐지만 의류업계는 벌써 추동복 디자인을 마치고 생산과 발주에 들어가고 있다. 성패의 관건은 마케팅에도 달려 있겠지만 역시 유행할 디자인과 색상을 미리 간파하는 예지력이라 할 수 있다. 사이즈별로 적절하게 만들어 재고를 결정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해야 가능한 일이다.’
바로 의류업계에 고객관계관리(CRM)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이에 따라 제익모직(패션부문)과 LG패션 등 대기업이 CRM 도입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신원과 나산 등 두 중견 업체들도 CRM 도입을 고려중이다. 신원은 최근 CRM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내부 세미나를 가졌으며, 나산도 고객관리팀을 중심으로 CRM 효용성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제일모직과 LG패션의 움직임과 비교해 볼 때 중견업체의 CRM 도입검토는 일단 “조심스럽다”는 평을 듣는다. 이처럼 중견 의류업체가 CRM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검토수준에 머무는 이유는 의류업계에 아직 성공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지’, 투자대비효과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나산과 신원측은 CRM 도입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로 데이터의 정확도가 여전히 떨어지는 데다 효과적인 분석을 위한 데이터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나산의 신영광 전산실장은 “확보된 회원들의 정보중에는 기초적인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부실한 데이터가 적지 않다”며 “CRM이 판매부문의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데이터베이스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의 조영진 정보시스템 부장도 “1차 가맹점을 주요 고객으로 관리하는 데만 급급해 최종 고객인 소비자의 정보가 많지 않다”며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는 기본 데이터 축적부터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최종 소비자 데이터를 가맹점 등과 공유하는 의류업체는 많지 않다”며 “CRM 도입에 앞서 웹POS 등을 활용한 데이터 확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신원은 지난 2월 웹POS를 설치해 매장정보를 본사에서 실시간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약 10만건의 데이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