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IT문화를 만들자>(25)냄비식 IT문화를 근절하자

 최근 모든 기업의 비즈니스가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이에 대한 기업의 투자도 천문학적인 규모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보다 빠르게 최신 정보시스템을 도입하는 데만 신경이 팔린 나머지 도입 목적 및 효과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 선행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A사가 CRM을 도입한 후 매출액이 증가했다더라. 그렇다면 우리도 CRM을 도입해보자’ ‘B사가 인터넷쇼핑사업을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된다니 우리도 해보자’라는 식으로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는 ‘냄비식’ IT열기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쉽게 달아올랐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식어버리는 냄비문화가 IT분야에서도 만연될 경우 21세기 가장 중요한 화두인 기업정보화를 그르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새로운 세기로의 진입을 앞둔 지난 90년대는 이른바 ‘닷컴기업’으로 불리는 인터넷기업들의 전성시대였다. 야후, e베이, AOL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를 벌이는 기업들이 초고속 성장세를 구가하면서 벤처기업은 물론 굴뚝산업을 대표하는 전통적인 대기업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인터넷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급기야 상당수의 기업들이 ‘XX닷컴’이라는 식으로 인터넷 냄새를 풍기는 이름으로 사명을 바꾸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투자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투자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기업의 가치 및 수익성에 대한 분석없이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라면 무조건 투자자들의 뭉칫돈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닷컴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90년대 막바지부터 서서히 닷컴에 대한 거품이 걷어지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 들어서 더이상 닷컴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대부분의 인터넷 비즈니스가 과잉 경쟁 및 신규 수익 창출 실패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많은 닷컴기업들이 파산 신청을 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닷컴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침을 흘리며 몰려들던 투자자들도 언제그랬냐는 듯 발길을 돌렸다. 투자자들은 오히려 닷컴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회사는 재무구조가 좋더라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제는 반대로 회사이름에서 닷컴을 떼버리는 경우가 늘어났다.

 한번 바람을 타면 아무런 원칙없이 비이성적인 확산을 거듭했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냄비 문화’의 한 단면이 21세기 첨단기술 영역에서도 재현된 것이다.

 이러한 냄비식 IT문화의 또다른 모습은 기업정보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객관계관리(CRM), 지식관리(KM), 기업정보포털(EIP) 등은 과거에는 일부 IT전문가들만이 쓰던 말이었지만 이제는 입사시험의 상식문제로 나올 정도로 일반적인 용어가 돼버렸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기업정보화의 일환으로 이러한 최신 정보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드문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XX시스템 가동’이라는 현수막을 거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충분한 사전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스템을 도입해 활용도가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동종업체 사이에서 비일비재하다. 카드사업을 벌이는 A사가 CRM을 도입하면 경쟁업체인 B사와 C사는 앞뒤 가리지 않고 CRM 도입에 나선다. 물론 금융서비스 사업에서 CRM의 중요성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자사의 DB 구축현황 및 향후 활용계획에 대한 충분한 준비 없이 CRM을 도입하다보니 투입된 비용에 상응하는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기업들의 이러한 냄비 문화를 역이용하려는 IT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비슷한 성능의 휴대폰 단말기를 디자인만 조금 바꿔 출시해도 장사가 되듯이 같은 개념의 정보시스템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영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재해시 전산자원의 복구를 위한 서비스는 ‘DRS(Disaster Recovery Service), BRS(Business Recovery Service), BCP(Business Continuity Planning)’ 등으로 조금씩 이름이 변해갔으며 현재 국내에서는 일반명사처럼 돼버린 ‘네트워크통합(NI)’도 초기에는 관련 업체들이 ‘시스템통합(SI)’ 사업과는 다른 사업영역을 찾기 위해 확산시킨 개념이었다.

 이밖에 기업의 e비즈니스를 포괄적으로 지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e컨설팅, 웹컨설팅, eBI(eBusiness Integrator)’ 등도 이러한 예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냄비식 IT문화와 관련, 활용 계획을 갖고 기업 정보화를 추진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차피 IT를 외면한 비즈니스나 기업 조직은 무의미한 시대가 도래한 만큼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준비 과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CRM을 도입한다면 신규 고객 유치나 기존 고객관리 강화 중에서 최우선 과제를 선택해야 보다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KM을 도입한다면 도입에 앞서 기업내 정보공유문화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고 정보공유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에 앞서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기업의 사업구조 및 IT인프라 분석을 통해 꼭 필요한 정보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자세가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기고-IT와 냄비

 기업에 있어서 정보기술(IT)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기업은 이러한 대전제 아래 IT가 기업경쟁력 강화에 어떻게,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는가를 고려하여 IT를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한 채 남이 하니 나도 한다라는 식의 IT투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IT는 성격상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수용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정보시스템을 구축했더라도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이 없으면 이를 100% 활용하기가 불가능하다.

 기업정보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업의 경영적인 언어와 지표로 정보화의 목적과 목표를 표현하는 것이다. 단순반복적인 성격을 가진 업무의 효율화, 파트너와의 정보공유를 통한 협력강화, 고객정보 통합을 통한 마케팅 효과 극대화 등의 목적과 이에 따른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설정하고 이의 달성을 위한 정보화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면 기업들은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IT투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 그리고 기업을 상대로 IT사업을 벌이는 IT업체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일반 기업에 있어 새로운 정보시스템에 대한 정보의 획득과 평가가 어려운 작업인 만큼 이들 기업이 유행에 휩쓸려 우를 범하지 않도록 정보기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제공하고 정보기술의 발전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IT업체들에는 기업고객들을 상대로 한 영업시, 당신의 경쟁사가 도입했으니 도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부추기기보다는 IT 도입의 유형적(tangible)·무형적(intangible)인 효과를 장단기적으로 분석하고 이것이 경쟁력 강화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를 제시하여 IT 도입을 추진토록 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냄비식 IT문화를 근절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IT 투자 자체를 낭비로 인식하는 과장된 걱정이다. 특히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비슷한 규모의 IT투자를 한다고 해서 이를 ‘뱁새가 황새따라가는’ 식으로 바라봐선 곤란하다.

 과거와는 달리 기업의 규모와 IT 투자가 비례하는 면은 많이 줄어들었다. 정보사회로의 진입 이후에는 중소기업이 IT를 잘 활용하여 기업 규모에 비해 큰 성과를 내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기업 규모에 따라서 IT 투자 규모를 결정한다기보다는 IT 투자로 얼마만큼의 성과를 이룰 수 있는가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얼마전 필자가 방문한 도매업종의 한 기업은 직원 20명에 매출이 월 7억원 정도인 중소기업인데 경영업무 처리에 컴퓨터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출 규모가 작다보니 IT 투자를 일종의 사치로 여겨 이 부분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는 회사였다.

 이처럼 정보화의 혜택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정보화시대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불고 있는 월드컵 열풍과 관련, 축구 전문가들은 이를 우리나라 축구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축구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는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을 유소년 축구와 중고교 축구부 활성화 등 꿈나무 육성에 돌리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정보화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을 빠르게 수용하는 우리 국민 특유의 경향을 잘 활용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업들은 정보화가 ‘불(투자)’이 꺼져도 일정 기간 계속 ‘끓는(성과를 내는)’ 가마솥과 같은 특성을 갖도록 조직구조, 의사소통과 의사결정, 업무처리 프로세스를 재조정해야 한다. 기업이 IT 투자에 있어서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치고 이를 100%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다면 정보화 풍토를 현재의 ‘냄비’에서 ‘가마솥’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단국대 경영정보학과 권순범 교수 sbkwon@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