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미래의 공동체 / 피터 드러커 외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한 달 동안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은 우리나라 최초의 4강진출이란 위업 달성 외에 전국민이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한 체험 공유의 장이었다. 거대한 도시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상징되던 이웃간 ‘단절의 벽’이 허물어졌으며 나이·성별·지역·종교·세대·빈부격차를 뛰어넘어 붉은색 티셔츠만 걸치면 누구나 ‘우리’가 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익명성과 무관심으로 점철돼온 도시의 이웃문화가 ‘대∼한민국’이란 함성의 용광로에 녹아들어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희망섞인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잊혀졌던 공동체 문화와 의식을 되찾게 됐다는 감탄과 찬사도 쏟아지고 있다.

 원래 공동체가 형성되는 토대는 물리적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다양한 교통수단과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활동 범위는 더 넓은 지역과 영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특히 80년대 이후 진행된 정보화와 세계화는 오랫동안 인간 삶의 상수(constant)로서 자리 잡았던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최종적으로 파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사라진 미래 세계에 공동체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가.

 드러커 재단이 발간한 ‘미래의 공동체’는 스티븐 코비, 레스터 서로, 제임스 박스데일, 엘라이 위젤을 위시한 총 29명의 저자들이 최근 새로운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공동체의 본질과 특징 및 원리를 조명한 야심적인 미래 시리즈의 하나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오늘날 공동체가 당면한 주요 관심사는 무엇이며 미래 공동체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면 활기차고 포용력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독특한 관점과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공동체는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체인 문제해결 공동체(community of requirement)였다. 문제해결 공동체에서는 순응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 사항이었고, 구성원이 공동체를 떠나기보다는 공동체가 그 구성원을 쫓아내는 일이 훨씬 더 용이했다. 이에 비해 미래의 공동체는 선택의 공동체(community of choice)다. 선택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결코 강요당하지 않으며 이들이 원한다면 쉽게 공동체를 떠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인 공동체가 우리가 어디에 사는가 하는 것, 즉 근접성을 바탕으로 경계를 형성했다면, 미래의 공동체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 즉 가치를 중심으로 형성될 것이다. 지역적 근접성에 입각한 공동체가 구성원들에게 공동의 목적을 갖게 했고 공동체가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있게 했으며 행동을 통제할 수 있게 했다면, 가치 중심의 공동체는 물리적으로 눈에 띄는 것보다는 느낌을 중요시하며 구성원들이 거리에 상관없이 쉽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게 한다.

 그러면 이 같은 가치 중심의 공동체, 선택의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이와 관련, 저자들은 20세기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오늘날 사회의 곳곳에서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가와 시장에는 회의의 시선을 보낸다. 이들에 따르면 국가와 시장보다는 오히려 교회, 전문직업인단체, 지역사회단체, 헬스클럽 등 시민사회 부문이 미래 공동체 건설의 주역이다.

 전반적으로 이 책의 저자들은 제각기 뉘앙스와 논점의 차이는 있으나 미래의 공동체 건설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희망에 찬 전망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미래 공동체 형성의 주도 세력으로 비정부기관·비기업·비영리 단체들을 강조한 점, 이를 위한 원칙과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제시하고자 한 점 등은 국가와 시장을 넘어 21세기의 새로운 공동체 모델과 문화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많은 시사와 교훈을 주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공동체적 잠재력에 과다한 비중을 두고 있고 구체적 증거나 설득력 있는 사례의 제시가 아니라 석학들의 통찰력과 상상력에 의존하는 논리 전개는 수긍하기 어렵다. 미래의 글로벌 공동체는 상호 관련된 공동체의 역동적 집합체며 다양한 차이가 포용되고 조화를 이루면서도 에너지를 발산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예측 역시 공동체의 분열과 해체, 세계의 점증하는 부조화라는 오늘의 지구촌 현실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섣부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way21@duk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