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 사고방지에 효과가 입증된 잔여시간 표시기가 각 지자체의 설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제한규정 때문에 보급·설치에 난항을 겪고 있어 시민안전을 위한 정부차원의 제도개선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잔여시간 표시기는 횡단보도에 설치된 보행신호등 옆에서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교통안전설비로 지난 2년간 총 1800여 건널목의 양 길가에 설치돼 횡단보도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고위험을 줄여왔다. 깜박거리는 신호등. 지금이라도 횡단보도를 건널지 보행자가 망설이는 순간 잔여시간 표시기가 제공하는 안전성은 탁월하다. 특히 보폭이 짧은 노약자나 어린이들의 무리한 횡단시도를 예방하는데 효과적인데 실제로 전남지역 일부에선 잔여시간 표시기 설치 전후로 건널목 교통사고가 80%나 감소한 통계조사가 나온 바 있다.
시민들의 호의적인 반응 속에 각 지자체에서는 잔여시간 표시기 발주량을 크게 늘리고 있으나 포렉스, 포올정보통신 등 잔여시간 표시기업체들의 상반기 매출실적은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도로안전시설을 관리하는 경찰청에서 잔여시간 표시기의 추가보급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제정된 경찰청 규격에 따르면 잔여시간 표시기는 ‘편도 4차선 이상 도로의 횡단보도로 보행자가 많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국 학교 앞이나 주택가 인근의 대다수 건널목은 아예 표시기 설치 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어린이들이 표시기를 보며 횡단보도에서 건너뛰는 장난을 칠 가능성이 있어 어린이 보호구역, 주택가에는 설치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보행신호등이 설치된 전국의 횡단보도는 약 4만3000곳. 경찰의 설치 규정을 따르자면 우리나라 횡단보도 중에서 약 9%(4000개)만 표시기를 세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서울의 각 구청과 수원, 고양 등지에선 학교 앞 건널목에 표시기 설치를 요구하는 민원이 잇따라 반려되고 잔여기간 표시기업체들은 경찰측의 규제완화만 애타게 기다리는 실정이다.
관련업계에선 사고위험이 높은 횡단보도에 표시기 설치가 허용될 경우 연 500억원대 내수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한다. 또 잔여시간 표시기는 한국, 일본에만 보급된 교통안전시설이기 때문에 향후 ITS업계에 새로운 수출 유망품목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높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교통환경연구원의 신부용 원장은 “사고예방에 효과적이고 주민들도 원하는 잔여시간 표시기를 굳이 제한할 이유가 없다”면서 노약자, 장애인 이용이 잦은 횡단보도에 표시기가 설치되도록 하루빨리 경찰이 설치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