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업계 단가인하 압력, 무엇이 문제인가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부품업계가 세트업체들의 지속적인 공급가격 인하압력에도 불구, 이를 수용할 여지가 없어 난관에 봉착했다.

 여기에 지난 1분기 반짝했던 경기가 2분기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가격압박과 수요부진까지 겹쳐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업계 일각에선 “이러다간 채산성 확보는 고사하고 저가를 무기로 갈수록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 및 동남아 업체들에 안방을 고스란히 내주고 말 것”이란 위기감마저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

 ◇가격압박 배경=세트업체들이 부품업계에 대한 가격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대외적인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한 원가절감을 부품조달비용 감축에서 찾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제품설계나 관리부문의 슬림화 등 내부적인 원가절감이 한계에 달한 세트업체들로선 부품단가 인하를 통해 원자재비중(MC)을 낮추는 것이 보다 간편하고 성과가 눈에 띄기 때문이란 얘기다.

 지속적인 환율하락에 따른 영업외적인 실적감소를 만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도 해석된다. 물론 대부분의 세트업체들은 올초 적정환율을 1100∼1200원대로 보수적으로 잡고 경영계획을 짰으나 최근 환율하락의 추세가 만만치 않다.

 부품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는 세트업체들로선 환율하락에 따른 매출 및 이익부문의 부담을 부품공급가 인하로 만회하기 위해 납품가 인하압력을 구사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무엇이 문제인가=세트든 부품이든 제품이 개발된 이후 시장에 공급되면서 차츰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최근 세트업체들의 가격인하 압력은 그 폭이 지나치게 크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재 PCB·커넥터·모터·콘덴서·수정디바이스 등 주요 일반부품의 평균공급가격은 연초 대비 10∼20% 가량 떨어진 상황. 특히 일부 커넥터의 경우 하락률이 최대 70%에 이를 정도로 가격이 주저앉았다. 그런데도 세트업체들의 단가인하 압력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더 큰 문제는 부품업체들이 세트업체들의 가혹한(?) 단가인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우리나라가 ‘전자대국’을 자처하지만 부품수급 구조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세트업체와 부품업체가 ‘갑’과 ‘을’의 종속적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삼성전자 등 굴지의 세트업체들은 ‘슈퍼갑’에 비유될 정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격인하 도미노=현실적으로 세트업체들의 가격인하 압력을 그대로 수용하기엔 국내 부품업체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경기부진이 예상외로 길어지고 있는데다 각종 부대비용이 늘어나 매출목표 달성은 물론 채산성 확보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환율하락에 따른 원자재 수입부담이 줄어들었다지만 이 역시 큰 도움이 못된다. 대부분의 부품이 로컬 또는 직수출되고 있는 탓에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트업체들의 가격압박은 불가피하게 부품, 원자재, 관련장비 등 후방업체에 도미노현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품업계는 세트업체와 소재업체 사이에서 ‘샌드위치 마크’를 당하고 있어 어느 한쪽도 가격협상에 우위에 서기 힘들다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더욱이 부품업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인 반면 세트업체와 소재업체들은 주로 대기업이다.

 PCB업체의 관계자는 이와 관련, “현실적으로 세트업체들의 가격압박을 수용하기 위해선 일부나마 소재업체에 부담을 전가해야 하는데 오히려 소재업체들도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안은 무엇인가=현실적으로 부품업계가 세트업체들의 가격인하 압력에서 벗어나 뾰족한 대안을 찾기는 만만치 않다. 다만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고부가제품 중심으로 생산구조를 전환하고 꾸준한 제조기술 개발과 내부 비용절감, 생산기지 해외이전 등을 통해 원가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트업체들이 협력업체들과 ‘윈윈’해야 한다는 대승적인 마인드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중견 부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부품공급가 인하가 세트업체에 당장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그로 인해 부품업체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손해를 초래할 것”이라며 “세트업체도 이제 ‘소탐대실’하지 말고 부품업체를 진정한 협력업체로 인정하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박지환기자 daeba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