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이 아남반도체의 대주주가 되기 위해 대금납입, 주주총회 소집 등 법적 절차를 준비중인 가운데 향후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의 사활을 결정할 것으로 보이는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의 0.13미크론 공정 수탁생산 수주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동부전자는 이달부터 반도체장비업계를 상대로 0.18미크론 공정 장비를 발주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연기한 채 TI와의 협상에 매달리고 있어 이래저래 장비업계의 애를 태우고 있다. 또 김규현 아남반도체 사장 등 현 경영진의 거취와 아남반도체에 파견될 동부그룹측의 집행임원 선임, 이후 경영계획 확정 등도 TI의 협상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반면 업계에서는 동부그룹과 앰코측이 밝힌 대로 추가 발주에 대한 TI의 언질이 있을 수도 있으나 0.13미크론 공정은 비메모리부문의 최고 기술력이 필요한데다 TI의 기술지원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단기간에 결론이 내려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TI 추가 발주 할까=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TI는 세계적으로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아웃소싱 비율을 50% 이상 늘리겠다는 전략아래 외주업체로는 처음으로 97년 아남반도체에 디지털신호처리기(DSP) 생산을 맡겼고 최근까지 유일한 협력업체였다. 그만큼 전략적이고 절대적인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TI는 아남으로부터 0.13미크론 공정 확보가 어려워지자 지난 4월 대만 TSMC와 UMC를 추가로 협력업체로 지정하는 등 구리공정 등에 대한 기술이전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해 아남반도체의 주가하락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TI가 TSMC·UMC와 원활한 협조관계를 구축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인식한데가 일부 제품생산을 맡긴 중국 SMIC도 수율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다시 아남과의 관계를 재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동부와 아남이 적절한 조건과 품질안정에 대한 확신만 심어준다면 TI의 추가 주문을 받아 대만·중국업체들의 견제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동부 자금 동원력이 문제=TI는 동부그룹의 자금확보 문제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앰코테크놀러지와 아남반도체, 동부그룹 등이 댈러스에 있는 TI 본사를 방문해 협의하는 과정에서도 TI측은 동부전자의 추가 자금확보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TI가 아남에 대한 기술력에는 큰 신뢰를 표명했다”면서 “그러나 동부그룹의 투자능력에 대해 좀더 살펴보려는 의지를 보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동부측 관계자는 “동부건설·화재·생명 등 아남반도체 지분인수에 참여한 관계사들은 모두 영업이익이 1000억원이 넘는 우량기업”이라면서 “동부전자 역시 아직 사업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부채규모가 작고 리스크 부담도 덜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 아남의 현금 보유액이 1000억원을 넘고 있고 월 2500만달러 이상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면서 “미세공정에 대한 투자는 큰 문제거리가 아니다”며 늦어도 내달 하순께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동부와 아남의 TI 추가 물량 확보 여부는 동부가 자금력과 투자 의지를 어떻게 TI측에 보여주느냐에 따라 향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