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형 마케팅>(원제 : Kotler on Marketing), 필립 코틀러 지음, 세종연구원 출판
-인터파크 이기형 사장(ceo@interpark.com)
월드컵의 감동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일상생활에서의 에너지로 녹아들고 있다.
‘발로∼차, 발로∼차…’ 거리 모퉁이에서 월드컵 응원가가 새어나와도 흥분이 앞서지 않는다. 대신 그동안의 신들렸던 열정을 하나하나 곱씹어보게 된다.
축구는 공을 발로 차는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누가 모를까. 기본은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4강에 오른 우리 국민은 보다 고차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많이 친숙해져 있다. ‘멀티플레이어’라는 역할이 그렇고, ‘압박’이란 전법이 그러하다.
패스를 잘하자는 얘기도 좋지만, 미드필드를 장악하라는 말이 전술적으로 더 의미있게 들린다. 보고 즐기는 축구 관전에서도 좋은 개념을 획득하게 되면 더욱 즐겁고 시야도 한껏 넓어진다.
비즈니스의 핵심은 물건을 파는 것이다.
이러한 상품(Product)의 판매를 두고, 마케팅이론에서는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말만 번지르르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상품이 차별화 돼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Customer Value)’라는 개념의 도움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물건값은 싸야 좋은 것일까. 판매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싸다는 것은 박리를 다매의 효과로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을 경우에만 좋은 것이다.
그런데 가격(Price)을 고객의 비용(Cost to the Customer)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사회적으로 이것은 분명 낮아질수록 바람직한 것이다. 또 유통망이라는 것을 장소(Place)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하면 인터넷쇼핑몰이나 그밖의 원격상거래는 설명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편리성(Convenience)이라는 개념으로 바꿔 생각하면 단번에 쉽게 이해된다. 판촉활동(Promotion)도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개념에서 파악하는 것이 더욱 본질적이며 실제 운영면에서도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전통적인 마케팅믹스인 소위 4P(Product, Place, Price, Promotion)는 4C(Customer, Cost, Convenience, Communication)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관점의 변화다. 판매자의 관점에서 구매자의 관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마케팅도 이처럼 ‘고객’의 입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필립 코틀러 박사가 알기 쉽게 쓴 이 책의 주제라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믿고 가슴에 새겨둘 수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이론의 최고권위자가 균형잡힌 시각에서 최신의 이론과 개념을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참고서 정도가 아니라 바이블로 삼아도 좋을 법하다. 한동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가 유행어만 남기고 사라지는 서물과는 분명 다르다.
현업에 있는 사람을 세심하게 배려한 것도 돋보인다. 실용적이다.
예를 들자면, 고객을 신규로 확보하는 문제를 논하는 대목. 고객확보에 따르는 비용을 계산하고 고객이 평생동안 안겨주는 수익을 계산한 다음 양자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쉬운 수치로 시뮬레이션이 돼 있어서 이해가 어렵지 않다.
굳이 흠을 잡자면 번역본의 제목이다. e마케팅에 관한 부분들은 원론적인 서술에 머물고 있어 ‘미래형’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e비즈를 위한 마케팅에 유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은 비즈니스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숙제로 남겨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