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67)전신원 카네기(상)

 

 

 우리가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대화 중 한마디가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의 계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우연한 한마디의 말, 한번의 눈길이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1850년 초.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시의 전신국 국장이었던 데이비드 브룩스는 오랜 친구인 호건과 장기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전보배달부가 될 좋은 소년을 알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호건은 자신의 조카를 떠올리고, 그 소년이 근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그 대화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대화였지만, 한 인간의 운명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숙부인 호건의 말을 들은 소년은 전신배달원이 얼마만큼 큰 일인 줄 알고 있었다. 주급 2달러50센트. 적은 돈이 아니었다. 15세의 나이에, 더군다나 남들보다 작은 체구로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늦은 밤 시골에 전보를 배달하면서 겪어야 될 위험도 우려가 되었다. 어쩌면 전신국에서는 더 큰 소년을 희망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 기회를 받아들였다. 석탄을 때서 보일러를 돌리는 공장 직공인 현재의 일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소년은 피츠버그시로 가서 전신국장 브룩스를 만나기로 했다. 날씨는 활짝 개었고, 소년은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소년과 아버지는 집에서 약 2마일 되는 길을 걸었다. 전신국의 입구에서 소년은 아버지께 밖에서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혼자서 층계를 올라가 2층의 사무실 겸 전신실로 들어섰다. 아버지와 함께 가지 않은 것은 혼자서 들어서는 것이 좀 더 당당하게 보여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소년은 차근차근 자신을 소개했다. 피츠버그시를 잘 모르는 것이 장애가 될지 모르지만, 될 수 있는 한 빨리 배울 각오라는 것과 어쨌든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등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전신국장은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소년은 만일 원하신다면 지금부터 곧 시작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기회는 그 자리에서 잡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니, 할 수 있다면 곧 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전신국장은 곧 한명의 전신배달원을 불러 소년에게 일의 형편을 보여주며 함께 데리고 다녀, 일에 익숙해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한사람의 배달부가 있었고, 소년은 새로 고용하기로 되어 있는 또 한명의 전신배달원으로 채용된 것이었다. 소년은 곧 아래층으로 해서 네거리로 달려가 아버지에게 만사가 잘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얼른 집에 돌아가 자신이 채용되었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되어 15세의 나이로 소년은 본격적인 인생의 제1보를 내딛게 되었다. 1주 1달러로 어두운 지하실에서 증기솥과 씨름하며 석탄먼지로 검둥이가 되어 인생의 향상을 도모할 만한 자극을 기대할 수 없었던 소년에게, 전신배달원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소년의 주위에는 신문, 펜, 연필, 거기다가 일감이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으며, 새로운 것을 익히기 위해서는 단 1분도 무척이나 큰 시간이었다.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싫든 좋든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뜻했다. 소년은 한계단 한계단 올라서는 데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소년은 맨 먼저 배달해야 하는 지역의 많은 상사의 주소를 빨리 욀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방안으로 우선 거리 한쪽의 간판이며 표찰을 수첩에 적어넣었다. 그런 다음 반대편의 것을 적었다. 밤이면 많은 상사를 순서대로 정확하게 소리내어 읽어 외는 것이었다.

 다음에는 눈을 감고 상점가의 아래쪽으로부터 시작하여 한집씩 순번으로 이름을 대고, 그리고 다시 머릿속으로 건너편으로 건너가 같은 식으로 해보는 것이었다. 다음 단계는 사람을 아는 일이었다. 만일 상사의 멤버나 사원을 알고 있으면 배달부에게 무척 유리하고 또 배달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거리에서 상대에게 전보를 건네줄 수 있다면, 그것은 소년에게 있어서 대단한 승리라고 여겨졌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사람을 거리에서 불러 세우고 전보를 주면, 그들은 언제나 전보를 건네주는 자신을 주목하고 칭찬해주어 무척 기뻤다.

그 소년의 이름은 카네기였다.

 세계 제일의 철강왕으로 군림했던 카네기가 자신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전신배달원 당시의 이야기다. 1835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수직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때인 184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이주, 어린 나이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전신배달원의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카네기가 근무하던 피츠버그 전신국 내부를 아침마다 청소하는 것은 전신배달원의 몫이었다. 배달원들은 전신장비가 놓여 있는 전신실도 청소를 해야 했다. 때문에 전신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전신기계를 만져 볼 기회가 있었다. 카네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일찍 청소를 마치고 그 전신기를 스스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카네기는 연습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않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타국의 소년들과 전신기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날 아침, 전신기가 크게 울렸다. 누군가 통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카네기는 용기를 내서 통신을 받았다. 그 내용은 필라델피아시에서 피츠버그로 사망전보를 즉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받겠느냐고 물었기 때문에 카네기는 보내면 받아보겠다고 대답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전보를 받아서 전달해주고는 전신원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아침에 저지른 주제넘은 행동을 사과하며 전말을 보고했다. 다행히도 전신원은 카네기의 행동에 대해 꾸짖기보다는 칭찬을 해주며 좀 더 정확하게 처리하기를 원했다. 나중에는 전신원이 외출할 때 전신기의 보호와 함께 모든 일을 맡기는 일이 종종 생겨서 카네기는 더 많이 전신을 배울 수 있었다. 카네기는 그 일을 맡는 것을 오히려 좋아했다.

 당시의 전신방법은 종이로 부호를 받은 다음 전신원이 읽어서 필경사에게 쓰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 때 전신을 직접 귀로 받는 방식이 발명되었다는 소문이 카네기가 근무하는 곳까지 퍼졌다. 카네기는 곧 이 신식 방법을 익히기로 했다. 아클렌 전신국의 전신원 한사람이 소리를 이용한 전신법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카네기도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어느날 전신원이 없을 때 전보를 받아야 했지만, 어린 카네기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있는 것이 비위에 거슬렸는지 필경사는 카네기를 위해 자리 옮기는 것은 거부했다. 이에 카네기는 부호가 찍히는 종이 대신 연필과 종이를 들고 귀로 전보를 받기 시작했다. 순간 그 필경사의 경악하는 모습은 카네기에게 일생동안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 남았다. 그 후, 카네기와 필경사는 서로 마찰 없이 친구가 되었다. 작은 다툼이 아니라 한꺼번에 극복하는 카네기의 인생관이 전신국에서도 적용된 것이었다. 어쨌든, 단계적으로 넘어서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것을 카네기는 신기술 습득이라는 과정을 통해 단 한번에 피츠버그 전신국 제일의 전신원이 될 수 있었고, 그 경험은 이후 카네기 성공의 토대로 활용되었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