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중소 PC업체인 아이돔이 부도를 낸 데 이어 최근에는 세지전자도 무너졌다. 최근 용산 전자상가에는 살생부가 돌고 있다. ‘모 업체는 다음달 부도가 유력하며 그 다음으로는 어느 업체가, 그리고 또 다른 모 업체는 곧 어느회사와 합병한다’는 시나리오 형식의 흉흉한 소문이 회자되고 있다.
중소 PC업체들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업체들이 난립해 있다는 점이다. 소규모 조립PC업체를 제외하더라도 현재 활동중인 중소PC업체 수는 현주·주연테크·세이퍼·현대멀티캡·로직스·대우컴퓨터·디지털뉴텍·성일컴퓨텍 등 8개사에 이른다. 이들이 국내 데스크톱PC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모두 합쳐봐야 27%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국내 데스크톱PC시장이 280만대 정도여서 8개사가 80만대 시장을 놓고 제살깎기식 경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표참조
여기에다 수요침체와 신유통채널의 등장으로 가격마저 급속히 하락하면서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중소업체 중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현대멀티캡은 지난 2000년 2800억원의 매출과 4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으나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40% 이상 줄어든 1560억원의 매출과 전체 매출액의 20%인 3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314억원의 매출과 27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현주컴퓨터는 지난 2000년 3325억원의 매출과 27억원의 이익을 기록했으나 지난해에는 3152억원의 매출이 소폭 감소한 데 이어 이익도 9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3분기까지의 실적(2001년 6월∼2002년 3월)은 2329억원의 매출에 27억원의 적자로 반전됐다.
중소PC업체들이 설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메이저업체들이 사업구조를 노트북PC 위주로 전환하고 데스크톱PC의 고마진 정책을 포기하면서 이들의 유일한 경쟁력이었던 가격우위도 상실되고 있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삼성·삼보·LGIBM·컴팩 등 국내외 메이저사들의 동종 제품과 50만원 이상 가격차가 있었으나 현재에는 20만원 이내로 좁혀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메이저사 제품보다 비쌀 때도 있다.
게다가 중소업체들은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노트북PC의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 현주컴퓨터의 경우 의욕적으로 독자적인 노트북PC ‘네오트랜드’를 개발했지만 한 달 동안 200여대의 판매에 그쳤으며 주연테크컴퓨터는 아직도 노트북PC사업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강철웅 삼보정보통신 사장은 “이제 PC사업은 더이상 소규모 생산으로는 원가부담 때문에 생존을 보장받기 힘든 구조”라며 “중소PC업체들도 합종연횡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채산성을 확보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중소업체들이 메이저들의 주무대인 노트북PC시장을 뚫기란 사실상 힘들다”며 “비록 규모의 경제를 이룩한다 하더라도 수익성이 없는 데스크톱PC만으로 생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암울한 중소업계의 앞날을 예고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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