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29)학원편 결산 좌담회

IT학원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좌담회가 최근 본사 5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대다수의 IT학원이 수강생이 줄어드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데 동의하며 이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전문화 및 특화 전략 등의 자구책 마련과 함께 정부 지원책 역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진기범 숭실대 교수, 박달경 아트센타 원장,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 홍기형 성신여대 미디어정보학과 교수.

  

 참석자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

 진기범 숭실대 교수·전산원 교학부장

 홍기형 성신여대 미디어정보학과 교수

 박달경 아트센타 원장

 

 풀뿌리 IT인력 양성소인 IT학원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커리큘럼은 신기술 트렌드를 따르지 못하고 강사 역시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한때 문전성시를 이뤘던 학원 수강생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폐강하는 과정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는 IT학원에도 전문적 영업 브로커가 활개,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본지는 지난 두달여간 총 7회에 걸친 ‘사람이 경쟁력이다-학원편’을 통해 이같은 IT학원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개선책 등을 지적했으며 이를 마무리하면서 학계와 학원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을 초청, IT학원이 제 역할을 찾기 위한 좌담회를 가졌다. 편집자

 

 △조현정 사장(비트컴퓨터)=소프트웨어 인력면에서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고 자부합니다. 특히 일본과 C언어 프로그래머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우수합니다. 이 같은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에는 IT학원이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진기범 교수(숭실대)=한국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강국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우리나라를 하드웨어 강국으로 인식하지, 소프트웨어 강국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 지적이 정확하다고는 볼 수 있지만 운용체계(OS) 등 기초분야나 우수한 인력을 하나의 통합된 에너지로 끌어내는 부분에서 취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IT학원 등의 교육도 응용프로그램 위주로 돼 있어 아쉽습니다.

 △박달경 원장(아트센타)=IT는 콘텐츠를 움직이는 플랫폼입니다. 콘텐츠 없는 IT는 무의미합니다. 이런 면에서 국내 IT교육은 편향이 심합니다. IT 운영 기술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염두에 둔 IT교육이나 IT정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학원교육의 경우 컴퓨터 운영이나 프로그래밍에 국한돼 있습니다. 콘텐츠 교육을 늘려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홍기형 교수(성신여대 미디어정보학과)=솔직히 대학이 IT기술 교육을 하고 있긴 하지만 IT기술의 변화속도를 따라잡기 힘듭니다. 이런 면에서 IT학원은 꼭 필요하다고 봐야죠.

 △조현정=이제까지 IT학원들이 우수 IT인력 양성에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만 지적하신 대로 최근 상당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격증 교육이 대표적 예죠. IT학원 대부분이 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시스코 등 국제공인자격증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IT는 자격증만으로 실력을 평가할 수 없는 데도 말이죠. 이제 혼자서 IT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교류하고 협력하는 분위기여야만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IT학원들이 자격증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정보통신부 등 정부의 잘못된 정책지원책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홍기형=선마이크로시스템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SCJP, MCSE 같은 자격증은 일주일만 공부하면 딸 수 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제 저희 학교에서도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이 이들 자격증을 별 어려움없이 거끈히 따내고 있습니다. 진짜 실력이 아니라 족보를 보고 공부하는 식인 셈이죠. 이 때문에 현재 이런 자격증 소지자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런 자격증은 해외에 나가도 인정 못받고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안됩니다. 그나마 외국계 업체들의 고급 자격증은 인정할 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하급 국제공인자격증 소지자만 양산되고 있습니다. 학생들 대부분이 수준 낮은 자격증만 따고 실제로 한국 전체의 IT실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고급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자격증 따기에 급급하고 IT학원들 역시 자격증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정통부나 노동부가 이런 자격증 과정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조현정=홍기형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정부 지원책의 방향이 바뀌어야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정통부나 노동부의 IT인력 양성 지원책은 학원에게 지원금을 무차별적으로 나눠주는 식입니다. 객관적인 기준없이 여러 학원에 퍼주는 식이죠. 학생들은 당연히 공짜 교육에 몰립니다. 교과과정의 질 등에는 관심이 없죠. 이런 학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지원책은 학원 부실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기관은 각각의 역할을 분담해야 합니다. 대기업 계열 학원, 대학, 중소학원 등이 각각 역할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시행해야 하는데 정부의 지원제도는 이러한 역할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고급인력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할 정부가 줄만 서면 어떤 학원이든 지원해주는 무차별적인 지원책을 실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때문에 학생들도 학원을 거의 공짜로 다니는 웃지 못할 경우가 생기는데 차라리 학자금을 저리로 융자해주듯이 학원비용도 저리로 융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지원기금을 재활용할 수도 있고 또 학생들이 돈을 지원하는 학원이 아닌 실력있는 학원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는 또 학원간 경쟁을 부추겨 학원의 질도 올라가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홍기형=국제 공인자격증 제도나 학원 지원방식 등 현재 정부의 지원책은 여러가지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원인은 아마 실적 위주의 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통신부나 노동부에서 지원은 해야겠고, 이런 지원에 대한 실적이 있어야겠죠. 이 때문에 정량적 수치로 나타날 수 있는 국제공인자격증 제도 지원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융자제도 같은 것은 의도는 좋지만 정부에서 관리 조직을 따로 두어야 하는 등 부담이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고급 IT인력을 전담해 양성하는 학원을 부양할 수 있는 지원책도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진기범=맞습니다. 이외에도 수년전에 도입된 학점은행제도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 제도는 2년 교육과정의 경우 학점으로 인정, 편입을 허용해주는데 숭실대 전산원 역시 이 제도를 도입·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좋은 취지긴 하지만 학생들의 IT 학습을 높이는데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이 제도를 악용, 학원을 종착지가 아닌 다른 대학에 편입할 수 있는 정거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달경=아트센타 역시 학점은행제와 관련, 120학점 정도를 인가받아 놨지만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점은행제를 하려면 평가위원회로부터 커리큘럼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고급 교과과정을 만들어 놓아도 다른 대학과 맞추기 위해 이를 평준화시키는 등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홍기형=현재 정부지원금은 우수한 학원에 지원되지 않고 학원이라는 딱지만 붙어있으면 누구든 지원받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IT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정부지원금을 타서 돈을 벌자는 속셈이었죠. 학원들은 좋은 커리큘럼 개발이 아니라 정부가 지원하는 코스에 치중합니다. 지원 학원을 평가하는 정부 담당자가 전문가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확실한 곳을 몇 군데 지정해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필요한데 이것이 안되고 있습니다. 학원으로부터 계획서를 받고 평가하는 작업, 사후 실태조사 작업을 강화하고 선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돼야 좋은 학원이 많이 생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됩니다. 현재의 방식으로는 부실학원만 양산될 뿐입니다.

 △박달경=학원도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존 방식으로는 수강생들을 끌어들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특화된 기술과 실무적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학원의 역할이라고 볼 때 학원은 전문화와 특화를 통해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등 다른 교육기관과 차별화하려면 학원은 실질적으로 잘할 수 있는 한가지 분야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IT학원이 문어발식 경영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산업계에서 어떤 인력을 얼마나 원하는지 알려주는 정확한 통계자료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홍기형=사실 하향평준화된 학원은 필요없습니다. 다수의 전문 엘리트학원이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IT인력 양성이 가능합니다. 영세한 학원은 강사 관리가 안됩니다. MS, 자바, 네트워크, SI식으로 전문화된 교육이 필요합니다.

 △조현정=정부 지원은 사실 학생이 아닌 강사 양성쪽에 투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많은 학생들이 강사한테 배울 것이 없다는 애기를 합니다. 강사 양성 이외에도 정부는 학원의 장기 교육을 제한하는 제도를 보완해야 합니다. 고급 인력을 양성하려면 학원도 장기 교육과정을 열어야 하는데 현재의 규정상 학원은 석달 이상 수강료를 선불받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부실 학원으로 인한 문제가 많다는 건 알지만 제대로 된 학원도 이 제도에 걸려 질높고 장기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진기범=학원 문제는 어떻게 좋은 인재를 키울 것인가 하는 큰 틀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부, 교육계, 학원계, 기업이 모두 폐쇄적인 각자의 영역을 박차고 나와 함께 고민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합니다.

 △조현정=다른 사람의 인생이나 시간을 담보로 사업하는 것인 만큼 학원은 특히 사명감을 갖고 사업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 역시 보여지는 수치에 연연하지 말고 실제 가치를 낼 수 있는 지원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정리=김인진기자 ij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