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위는 민간기구인가 정부산하기관인가’. 법적으로 보면 영등위는 당연히 민간기구다. 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관한법률(이하 음비게법)에 따라 영등위는 대한민국 예술원회장의 추천에 의해 대통령이 위촉한 위원들로 구성된 민간기구로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영등위를 민간기구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기관으로 출발한데다 여전히 ‘가위질’로 악명이 높았던 공연윤리위원회 시절에 보여줬던 아주 권위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행태가 남아 있다. 더구나 음비게법이라는 법적근거를 갖고 있어 영등위의 결정으로 인해 영상물자체의 판매가 결정되기 때문에 영등위의 힘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영등위는 민간자율기구를 표방하면서도 주 업무인 영상물에 대한 사전등급심의는 강제성을 띠고 있다. 심의는 누구나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데다 심의 내용을 어기거나 하면 곧바로 법적인 제재가 가해 지는 것이다. 영등위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예 “제품을 판매하거나 상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등위로부터 등급분류를 받아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강한 법적 제재를 받는데 영등위가 어떻게 자율기구가 될 수 있느냐”고 잘라 말한다.
사전등급분류라는 업무 자체도 ‘보류’나 ‘제한상영가’라는 사실상의 ‘상영불가’ 등급이 존재하다보니 결국 영상물에 대한 가위질로 이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영등위는 단지 공연윤리위원회가 이름과 가위질의 형태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그치지 않고 있다.
영등위의 김수영위원장은 ‘민간자율기구를 표방한 법정위원회’라는 말로 영등위의 성격을 표현한다. 영등위의 이중적인 모습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바로 영등위는 겉으로는 민간기구지만 사실은 법적 구속력을 갖춘 정부기관으로서의 색깔이 진한 것이다.
여기에는 영등위예산의 30∼50% 정도를 정부보조금이나 기타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영등위가 민간기구임에도 정부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를 잘 나타내 준다.
이렇다보니 영등위와 문광부의 관계도 애매모호하다. 문화부는 영등위가 산하기관으로 분류돼 있는데다 보조금까지 지급하다 보니 운영 및 관리부분에 개입할려고 한다. 하지만 영등위는 민간기구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같은 문화부의 간섭에서 벗어 날려고 하면서 양측이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에대해서 문화부 관계자도 “최근들어 무슨 말만 하면 간섭하지 말라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업무 관련 내용까지 공문형태로 보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영등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정도다.
이 관계자는 차라리 영등위가 자율적인 민간기구였다면 쓸데없는 갈등을 빚을 이유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영등위는 ‘규제와 통제위주 정책에서 민간자율과 지원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한다’는 명목으로 공연윤리위원회를 대체해 설립된 민간기구이지만 아직까지 민간기구로서 진정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음비게법을 근거로 설립되기는 했지만 이같은 설립 취지를 살려 ‘자율과 지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할지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할 때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