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산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PC는 시장규모도 규모지만 전후방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 좁게는 IT산업과 넓게는 전산업에 걸친 인프라적인 요소 등으로 통신과 함께 21세기 국가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다.
IDC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PC시장규모는 2160억달러 안팎이다. 이는 국내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시장규모 2150억달러를 상회한다. 국내 주력품목인 메모리반도체 세계시장 650억달러의 세 배를 훨씬 뛰어 넘는다. 연간 1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세계 정보통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5%를 웃돈다.
PC 전후방산업규모도 만만치 않다. 모니터·프린터·스캐너·저장장치 등 연관산업의 시장규모도 연간 1500억달러를 넘어선다. PC와 연관산업규모를 합치면 무려 3600억달러 규모다. 전자산업의 수출비중이 30% 이상에 달하는 한국이 이처럼 규모가 큰 PC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국내 PC와 연관산업의 수출액은 112억달러도 반도체, 자동차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중 PC 자체 수출액은 10%에 불과하지만 나머지 90%의 연관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PC산업의 기반확충이 절실한 실정이다.
“세계는 지금 컴퓨터와 통신을 두 축으로 디지털컨버전스, 더 나아가 유비쿼터스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있습니다. 21세기에는 컴퓨터와 통신, 이 양대 기술없이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무너져가는 국내 PC산업을 부흥시킬 돌파구를 시급히 찾아야 합니다. PC산업이 무너지면 IT강국이라는 한국의 면모도 사라지게 됩니다.” 김윤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지적이다. 차세대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포스트PC의 성공적인 시장진입을 위해서도 PC산업의 황폐화를 결코 좌시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어떻게든 수익을 확보해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선순환 사이클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통신이 21세기의 로마로 통하는 길이라면 모든 물자는 컴퓨터기술에서 출발합니다. PC 그 자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체적인 R&D의 기반을 마련하는 게 우선입니다.” R&D력과 제조력으로 ODM에 주력하고 있는 LG전자 관계자의 전언이다.
국내 PC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R&D를 선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PC업계가 안고 있는 로열티 부담은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판매가의 10%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가뜩이나 수익성이 좋지 않은 이 시장에서 로열티 부담까지 안고 있다 보니 지난 수십년간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희망적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LG전자는 ODM사업을 통해 다양한 특허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ODM이다 보니 직접적인 로열티 부담을 피할 수 있는 데다 브랜드 마케팅에 소요되는 경비를 R&D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PC에 관한 한 로열티 부담에서 벗어나고 있다. 통신 등 타분야에서 확보한 자사 특허와 교환할 수 있게 됐다.
남은 문제는 세계시장 공략에 필요한 가격경쟁력과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면서 지속적인 포스트PC 등 차세대 제품에 필요한 R&D 여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