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토리>해상왕 장보고(1) : 서울무비 이강민PD

 애니메이션의 모든 것은 백지에서 출발한다. ‘작품을 통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컨셉트의 설정은 더더욱 그렇다. TV시리즈 애니메이션 ‘바다의 전설 장보고’도 마찬가지였다. 장보고라는 커다란 의문을 쫓아가다가 어느 순간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영상과 느낌에서부터 이 작품은 출발했다.

 주안점은 장보고라는 역사적 위인을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표현할 것인가였다.

 시나리오 작가, 아트디렉터 그리고 기타 스태프 모두 장보고라는 물음에 대해 답답하고 막연해했다. 연필로 끼적거려 보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미 하루가 지났다. 새벽이 되어도 사람들은 그대로 있었으며 이렇게 보낸 날이 며칠이나 됐다. 

 우리에겐 컨셉트에 대해 오래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 2001년 12월에 반드시 애니메이션을 방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 프로젝트를 같이 추진하는 재단법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와의 약속이었다.

 연말에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려면 최소한 2001년 5월에는 기획단계가 정리돼야 했고 그 이후 에피소드별 디자인 설정 및 시나리오를 설정하기에는 정말 시간이 빠듯했다(컨셉트를 논의할 당시는 2000년 12월이었다).

 역사적인 자료를 모두 살펴보고 그 주변국들의 상황도 파악했다. 이상한 캐릭터의 얼굴에서 메카닉들이 한장의 종이에 다양하게 그려지다 문득 작가의 입에서 도발적인 말이 나왔다. “역사적인 내용을 다루지 않으면 어때. 그분의 기상을 보여주면 되는거 아니야.” 돌이켜보면 이 물음은 쉽지 않은 말이었다.

 역사적인 내용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기상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기상이야 어떤 식으로든 말해도 되지만 그것이 꼭 장보고라고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택했던 것은 ‘바다’였다. 장보고라는 역사적 인물의 주요 활동무대인 바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꿈과도 같은 존재 ‘바다’. 바다와 바다를 사랑했던 사나이 장보고 이 두가지를 제일 앞에 세운다. 그리고 과거 장보고가 실존했을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미래의 한 시점에 맞춰 구성하기로 했다.

 오히려 첫단추가 꿰어지고 나니 그 다음 단계부터는 쉽게 풀렸다. 그리고 수많은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사용하는 물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 친구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등 결정해야 할 수만가지의 내용과 전체 구성을 놓고 또 한번 고통을 치르고 있을 때 그동안 요약했던 내용을 작가가 들고 왔다. 살펴보니 이미 대부분의 내용이 정리돼 있었다. 단지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부분에서 너무 살을 입히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갈 즈음 장보고의 캐릭터를 비롯해 주변 디자인들이 완성됐고 배경을 담당하는 디자이너들은 자료를 수집하느라 분주히 외부로 촬영을 다녔다.

 지난 일이지만 이 시간이 오히려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스케줄에 대한 부분을 별도로 염두에 두지 않고 이것 저것을 작품에 삽입해보기도 하고 빼보기도 했다. 또 철야를 해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첫 에피소드의 내용이 요약될 즈음 우리는 5월이 지난 6월 늦봄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이강민 서울무비 PD kangmin@seoulmovi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