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정의 시네마 테크>아귀레, 신의 분노

▲아귀레, 신의 분노

 무모하고 고집스러우며 위험하고 광기 어린 존재 그러나 측량하기에는 너무 큰 거인 하나가 시선을 끈다. 1972년에 만들어져 우리 관객과는 30년만에 조우하게 되는 독일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Aguirre, der Zorn Gottes)’에 등장하는 인물 아귀레.

 1560년 남미대륙의 전설적 황금도시 엘도라도를 찾아나선 피사로의 스페인 원정대 부대장이었던 아귀레는 아마존강을 따라 탐험길에 오른다. 영화는 아귀레의 탐험 여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이 영화는 미지의 모험과 스릴에 가득 찬 어드벤처 무비가 아니다. 또 이국의 풍광과 신비를 소개하거나 스케치하는 여행기도 아니다. 뉴 저먼 시네마의 상징적 존재인 베르너 헤어조그(Werner Herzog) 감독은 극한 상황에서도 분출되는 인간의 무한 의지를 아귀레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아마존강 한가운데 떠있는 뗏목 위에 혼자 남아 있는 아귀레가 하늘을 향해 나지막하게 그러나 으르릉거리듯 외치는 한마디는 두려움과 전율의 매혹을 함께 선사한다.

 “나는 신의 분노다.”

 아귀레는 목적을 위해서 음모와 배신, 살인과 반역까지 추호도 서슴지 않는다. 일그러지고 광기에 찬 이 어둡고 두려운 반영웅은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스페인과 운명/신에 대해) 단호하게 저항하는 ‘위대하고 무모한 반역자’의 모습을 각인시킨다. 그럼으로써 그는 현실과 세속의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이고 초월적 인물로 승화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나무 위에 높다랗게 걸린 배와 도도한 흙탕물이 뗏목을 에워싸고 흐르는 아마존강의 모습은 이같은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500년전의 인물 아귀레는 클라우스 킨스키(나스타샤 킨스키의 아버지이며 ‘노스페라투’의 흡혈귀)에 의해 생생하게 재현된다. 작은 키에 구부정하게 굽은 등,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지만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강한 눈빛의 흡입에너지는 아귀레라는 인물의 힘의 원천을 만들어내고 있다. 클라우스 킨스키는 역시 헤어조그 감독의 1982년 작품 ‘피츠까랄도’에서도 아마존의 정글속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고 거대한 배를 끌고 험준한 산을 넘는 무모하고 광기 어린 인물로 또 하나의 아귀레 페르소나를 형상화시킬 만큼 그 자신 ‘아귀레적’ 배우인 것이다.

 30년이라는 시간 뒤에 찾아온 ‘아귀레, 신의 분노’는 작품과 인물의 스케일이 남다른 영화를 보는 기쁨을 준다. 흐름은 완만하지만 그것에 몸을 맡기다보면 어느덧 아귀레/헤어조그의 세계에 빠져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수원대 교수 chohye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