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력이 취약한 중소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구조조정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아이돔컴퓨터가 부도를 맞았으며 이달 들어서는 세지전자가 도산했다. 인수합병(M&A)도 시도되고 있다. 지난 5월 삼보정보통신이 현대멀티캡 지분 상당량을 매입, 인수에 나섰다. 현대멀티캡을 인수하려는 삼보정보통신은 지난 1월 디오시스에 인수된 업체다.
이달초에는 서울이동통신이 대우컴퓨터를 인수했다. 국내 PC업체들이 도산과 구조조정이라는 큰 격변기를 겪는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90년대 초반 행망PC사업을 계기로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PC사업에 참여하면서 고려컴퓨터 등 선발 중소업체들이 잇따라 무너지는 사태를 빚었다. 90년대 중반에는 세진컴퓨터를 비롯한 중견업체들이 소비자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면서 대기업을 위협하는 돌풍을 일으켰으나 끝내는 자금난으로 인해 무더기로 무너지는 사태를 겪었다. 이번에는 인터넷PC사업이 시들해지면서 현대·대우 등 대기업이 PC사업에서 발을 빼자 그 불똥이 중소업체에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장압력에 의한 수동적인 M&A로는 근본적인 한계에서 탈피하기 어렵다며 환골탈태할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M&A도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더이상 버티기 힘들 때 M&A를 시도하는 것은 부채만 키울 뿐 큰 효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HP와 컴팩의 통합처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전략 차원에서 시도돼야 합니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M&A를 극약처방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인식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생산량을 확대하되 조직은 슬림화해 채산성 악화를 감내할 수 있는 발전적인 방식이나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M&A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급망관리(SCM) 등 구매와 조달의 효율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경영혁신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PC의 경우 모듈제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을 해외에서 반입해야 하기 때문에 구매효율성이 매우 중시돼 있다. 대만업체들은 까다로운 빅바이어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주문날로부터 7일 이내에 제품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한 구매·생산·조달체제를 구축해놓고 있다. 국내업체들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매우 복잡한 채널을 통해 부품을 구매하고 있어 가격조건은 물론 부수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대만업계의 강점이랄 수 있는 부품 공동구매는 십여년이 지나도록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장의 해외 이전도 적극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대만업체들의 경우 생산기지를 대대적으로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격압박에 따른 제조원가 절감과 현지시장 개척을 노린 이중포석이다. 국내업계의 경우 삼성과 삼보가 중국과 멕시코 등지에 해외공장 한두 곳씩을 갖추고 있을 뿐 모두 국내생산에 의존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PC사업의 무게중심을 수출주력형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국내업계가 끊임없이 부침했지만 대부분 무게중심이 내수시장이었기 때문에 성장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집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국내 PC업계가 그동안 행망PC나 인터넷PC와 같은 국내 특수에 연연해왔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해버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연구원은 지금은 브랜드든 ODM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라 해외로부터 대량수주를 통한 대량구매·대량생산·해외공장이전·경영혁신 등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