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IT문화를 만들자>(27)IT기업이 나서야 한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천은 최신호에서 ‘기업들은 왜 실패하나’라는 제목의 분석기사를 싣고 기업의 실패 원인에 대해 다룬 바 있다.

 포천지는 기업 실패의 원인으로 △근시안적 땜질식 경영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는 잘못된 기업풍토 △무리한 몸집 부풀리기 △상사 눈치만 살피는 분위기 등 모두 10가지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이같은 지적은 국내 IT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포천지가 제시한 실패 원인을 순식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내 IT기업에 적용해도 큰 오차를 보이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90년대 후반 ‘산업 중의 산업’으로 불리며 주목을 받았던 IT기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민적 관심 속에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고 새로운 밀레니엄 개막과 동시에 전국을 강타한 닷컴열풍은 코스닥 신화와 함께 어우러져 소위 ‘IT 전성시대’의 절정을 이뤘다.

 하지만 이후 IT기업의 잇단 도산, 부정부패, 비리 등 실패사례는 IT기업이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건실한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IT기업의 건전한 문화 부재의 단적인 예로 전문가들은 우선 IT 동종업계간 ‘베끼기’ 경쟁을 꼽는다. 소비자의 반응이 좋고 돈이 벌린다 싶으면 앞뒤 안가리고 너도 나도 뛰어들어 유사 모델이 속출,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터넷 게임업계의 베끼기 경쟁은 이미 악명이 높다. 대부분 게임이 일정한 자원을 가지고 기지와 건물을 지은 뒤 전략을 구사, 상대방의 기지를 파괴하거나 항복을 받아내면 승리를 거두는 진행방식과 구성적인 측면에서 너무도 유사하다.

 기업이나 기관, 단체 등에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고 전자상거래, 게시판 등 각종 솔루션을 제공하는 웹에이전시 분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또 인터넷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비즈니스 모델 중의 하나로 평가받았던 인터넷 공동구매도 웬만한 인터넷 쇼핑몰과 닷컴기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장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애써 강조한다 하더라도 결국 업체간 과당·출혈 경쟁만 유발했을 뿐이다.

 포천지가 지적한 근시안적 경영과 몸집 부풀리기가 적절히 어우러진 결과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또 21세기 글로벌 경쟁시대에 지식과 정보가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으로 부상했지만 성장 제일주의에 목을 맨 IT기업들은 여전히 내실있는 인재관리에는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6월 일본계 다국적 기업의 CEO가 한국을 떠나며 “한국의 기업문화는 수직관계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조직내 수평적 관계가 부족하다”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이와 함께 회사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신입사원도 언제든 최고경영자를 만나 회사의 문제점이나 개선방안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처방도 함께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이같은 지적을 개인의 견해쯤으로 평가절하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튀는 행동으로 눈밖에 나면 어쩌나 두려워하고 적당히 상사 눈치만 살피도록 해 무사안일에 빠지도록 만드는 IT기업의 환부를 지적했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와 함께 IT기업들은 인재를 키우려는 장기 전략 없이 전문인력을 사장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는데 이 문제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마련에 고민하고 있지만 이같은 사례를 IT기업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닷컴열풍과 벤처기업의 등장으로 인한 경력자들의 활발한 이동을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IT업체들의 인재관리 실패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는 게 정설이다.

 선진기업들이 철저하게 능력주의에 바탕을 둔 연봉시스템과 성과제도를 시행하는 데 반해 IT기업 대부분은 여전히 연공서열 방식에 매달려 세계적인 추세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우수인재를 오랫동안 회사에 붙잡아 두려면 단순한 금전적 보상 이상의 동기부여 제도를 비롯해 기업마다 특성에 맞는 보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지만 이 역시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배경에는 역시 IT기업의 허술한 인재관리와 근시안적 경영전략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화려해보이는 외형보다는 해당 기업이 처한 상황과 비전에 따라 핵심 가치를 설정하고 보존, 강화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념이 바로 기업문화다.

 소위 세계 정상의 기업으로 일컬어지는 IBM·소니·시티코프 등은 회사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가치를 수립하고 이를 직원들과 공유해 기업문화로 정착시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런 기업문화가 임직원에게 강력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자발적 참여와 개방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시대에 걸맞게 IT기업이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를 구축하고 고유의 핵심가치를 추출해 이를 구성원에게 전파시킬 강력한 기업문화의 틀을 갖추는 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는 IT기업의 역사가 일천한 만큼 변화와 혁신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월드컵 때 축구 변방국가인 대한민국을 세계 4강 대열에 올려놓은 히딩크의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조직문화가 무한경쟁에서 탁월한 경쟁력임을 IT기업들이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IT업계가 새로운 기업문화 건설에 힘을 쏟고 있다.

 그동안 수익 위주의 성장 드라이브만을 추진해 온 IT업체들은 기업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경쟁력으로 이끌 수 있는 기업문화가 중요하다고 판단, 독특한 문화를 건설하는 데 역량을 모으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인터넷 포털업체 NHN(대표 이해진 김범수)은 직원들의 ‘자기계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인재관리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다. NHN은 우선 직원들에게 3년 간격으로 해외 배낭여행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배낭여행은 연차휴가와 별도로 최소 10일 이상 제공되고 여행 보조금도 100만원 이상 지급된다. 근무연한이 올라갈수록 여행기간과 보조금이 늘어나고 여행 후 3년이 지나면 다시 여행을 신청할 수 있다.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인재로 양성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외에도 직원들의 자기계발을 적극 독려하기 위해 각종 교육은 물론 여가활동까지 회사가 지원하기로 했다.

 사이버교육 전문업체 메디오피아(대표 장일홍)도 기업문화 정립에 본격 나서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부터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이고 전문가 자문을 구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 최근 조직문화안을 확정하고 본격적인 조직활성화 작업에 돌입했다.

 메디오피아는 ‘창조와 혁신’ ‘스피드와 도전정신’ ‘정직과 책임’을 핵심 공유가치로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평가와 보상제도 등을 새롭게 재정비했다. 또 사내정보망을 구축, 업무효율화를 꾀하는 한편 회사 경영에 직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직원의 온·오프라인 교육비와 사내 동아리 활동금도 일부 지원할 예정이다. 이밖에 매달 호프데이를 개최, 직원들간 팀워크도 다지고 장애인 돕기 성금도 모으기로 했다.

 검색엔진 전문업체 소프트와이즈(대표 김완혁)도 사원간의 지식공유를 통한 기업문화 건설에 동참하고 있다. 이 회사는 모든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진척 사항이나 각종 지식, 정보 등을 매일 최고경영자에게 e메일로 보내도록 하고 있다. 이후 김 사장은 중요한 내용을 정리해 다시 전직원에게 e메일로 발송한다. 직원들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는 한 기업목표와 비전이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는 김 사장의 소신에서 비롯된 결과다.

 이들 업체 관계자들은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의 능력만으로 성공신화를 창출하기에는 기업이 처한 경쟁이 너무도 치열하다”며 “임직원이 비전을 공유하고 지식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건실한 기업문화가 기업 경쟁력의 척도로 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