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부품으로 만들기 전 단계의 리퀴드메탈 덩어리. 금속 표면이 액체처럼 매끄럽지만 강철보다 3배나 튼튼하다.
포스트 플라스틱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보편화된 산업소재인 플라스틱에 버금가는 생산성을 지닌 리퀴드메탈 재질의 특수합금소재가 국내에서 양산되기 시작함에 따라 산업계 전반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21세기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리퀴드메탈을 개발한 회사는 미국계 기업인 리퀴드메탈테크놀로지스(대표 강종욱). 이 회사는 최근 평택공장에서 리퀴드메탈 재질의 휴대폰 외장케이스를 하루 10만개씩 양산하기 시작했다.
리퀴드메탈은 지난 수십년간 가전·정보통신기기 외장재로 사용해온 플라스틱을 대체할 정도로 재질 특성과 생산성이 우수해 향후 IT제조 업계에 소재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리퀴드메탈이란 무엇인가=지난 92년 미국 칼텍에서는 액체처럼 불규칙한(비정질) 원자구조를 지닌 합금(amorphous alloy)이 개발됐다. 리퀴드메탈이란 별명을 얻은 이 합금은 지르코늄(40∼45%)에 티타늄·니켈·구리 등을 섞어 만드는데 강철보다 3배, 마그네슘보다 10배나 강하고 적당한 열을 가하면 플라스틱처럼 성형이 자유로운 우수한 특성을 지닌다. 무엇보다 주조(다이캐스팅)공법으로 부품을 만들 경우 여타 금속소재는 부품표면이 거칠지만 리퀴드메탈은 물처럼 매끈한 외피가 저절로 형성돼 후처리 가공이 전혀 필요없게 된다. 여러차례 가공이 요구되는 복잡한 금속부품도 리퀴드메탈을 이용하면 마치 플라스틱부품을 찍어내듯 단 한번의 성형작업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또 부식이 전혀 없어 코팅을 하지 않고도 온갖 생활용품과 자동차 외장재 등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도표참조
◇리퀴드메탈의 응용범위=질기면서도 제조공정이 간편한 리퀴드메탈에 주목한 미국방부는 장갑판을 뚫는 포탄소재로 개발중이며 민수분야에서는 골프채·의료기기·가전제품의 외장재 등으로 활용범위가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다. 이미 리퀴드메탈로 제조한 ‘깨지지 않는 휴대폰’이 오는 9월 세계시장에 등장하고 계속 얇아지는 PDA, 노트북PC에도 곧바로 적용될 전망이다.
또 강성이 높은 리퀴드메탈을 자동차에 적용할 경우 차체 무게가 20%나 감소하고 기존 프레스공법으로 구현하기 힘든 획기적인 차량 디자인도 가능해지기 때문에 독일 모 자동차회사는 차량외판을 리퀴드메탈로 제조하는 방안을 국내 관계사에 타진하기도 했다.
◇리퀴드메탈의 파급효과=무엇보다 값싼 플라스틱과 비슷한 공정비용으로 강철보다 훨씬 질긴 금속제 부품을 손쉽게 양산하게 돼 제조업계에 일대 소재혁신을 몰고올 전망이다.
이는 장차 휴대폰·TV·컴퓨터 등 각종 문명의 이기가 깨지지 않는 반영구적인 금속소재로 대체되고 산업디자인 측면에서 파격적인 구조설계가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벽에 던져도 부서지지 않는 휴대폰, 실제 공책만큼이나 두께가 얇은 노트북PC의 등장이 눈앞에 다가왔다.
연세대 금속재료과 김도향 교수는 “리퀴드메탈 생산기지가 세계최초로 한국에 들어선 것은 국내 산업발전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하고 “제조업계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져올 비정질 합금기술에 대해서 정부·업계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유럽과 국내 금속연구기관도 유사한 특성을 지닌 비정질 합금소재를 개발중이나 현재 리퀴드메탈을 앞세운 미국이 상용화 경쟁에서 단연 앞서는 상황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