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부품업계>(1)프롤로그

 부품업계의 시장 환경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3분기부터 수요 회복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은 이미 무색해졌다. 정보통신기술 등 전방산업의 부진과 원화강세, 단가하락 등 부품업계의 대외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재가 겹치고 있다. 우리 전자산업 수출의 40%를 차지, 수출 산업의 견인차인 부품업계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인쇄회로기판(PCB)·수동부품·광부품·2차전지 등 주요 부품을 중심으로 2002년 부품산업의 현황과 발전 방향을 긴급 점검한다.편집자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을 제외한 대다수 부품업계는 요즘 총체적으로 깊은시름에 잠겨 있다. 기회와 위협 요인이 항상 상존해왔지만 올들어선 위협요인의 기세가 기회요인을 압도하고 있다. 물론 2.5세대 휴대폰 시장 확대, 게임기·DVD플레이어 등 디지털 영상기기 시장확대 등 기회요인도 없지는 않지만 대만 업체와의 경쟁심화, 네트워크분야 성장저조, 칩부품 및 통신부품의 가격인하 압력 등 위협요인이 이를 무색케 하고 있다.

 부품업계 관계자들은 “적정 재고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3분기 이후부터 부품구매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좀처럼 수요 회복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위협요인은 기업 경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에만 치중된 정부의 지원책과 관심은 대다수 부품업계에 깊은 소외감마저 안겨주고 있다.

 최근 부품업체들의 상당수는 대만과 중국의 저가공세에 대응하는 데 점차 한계성을 느끼고 있다. 특히 경쟁국인 대만과 일본 업체들이 발빠르게 하이엔드 제품을 중심으로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기 시작하면서 부품업체들은 심리적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실제 PCB 시장의 경우 난야 등 대만의 10대 메이커 중 8개사가 고부가 생산량의 60%를 중국에서 생산,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가격 경쟁력 우위로 국내외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어 대만산 주의보가 국내 부품업계에 내려진 상태다.

 부품업계는 또 복합화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디지털 가전제품의 등장과 초소형화는 표면탄성파(SAW)필터·유전체필터·듀플렉서 등 단품 사용의 정체 현상과 역신장을 불러왔다. 그 반면에 FEM 등 복합화 부품 사용량을 늘리게 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따라서 단품에서 복합화 상품으로 부품의 중심축이 이동하기 시작함에 따라 복합화 개발 여부가 바로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고 있다.

 복합화된 부품을 개발하기 위해선 고도의 설계회로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일부 대형 부품업체를 제외한 대다수 부품업체들은 이러한 기술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 인프라가 취약하다. 따라서 부품업체들은 복합화 부품 개발에 섣불리 뛰어들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세트업체들의 공급가격 인하 요구도 부품업계의 입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최근엔 저가입찰제까지 도입, 부품업계에 대한 전방위 가격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세트업체들이 상품의 원가 경쟁력 절감 차원에서 신뢰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싼 부품을 원하고 있다”며 “요즘은 마치 ‘사느냐 죽느냐’하는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지금의 위협요인을 극복하고 고부가·고기술 제품으로 부품산업의 무게중심을 이동한다면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과거 수출산업을 주도해온 부품산업이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고 국가기간산업으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업계 종사자들의 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