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수요와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사상 최대의 호황을 구가했던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시장이 계절적 비수기인 3분기 들어 수요가 위축되면서 공급과잉설에 휘말리고 있다.
세계 양대 TFT LCD업체인 LG필립스LCD와 삼성전자가 5세대 설비투자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데다 대만 5대 메이커가 잇따라 5세대 투자를 천명, 이르면 내년 2분기께 수요와 공급이 완전 역전되는 ‘오버 서플라이(과잉공급:over supply)’ 시기로 접어들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노트북과 모니터시장을 차례로 석권한 TFT LCD가 향후 LCD시장의 ‘보고(寶庫)’인 TV쪽으로 빠르게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데다 5세대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는 대만업체들의 자금사정상 투자가 그리 녹록지 않아 공급과잉론은 단지 ‘기우’에 그칠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공급과잉론=최근 공급과잉설이 불거진 근본 이유는 현재 중대형(10.4인치 이상)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한국과 대만의 LCD업체들이 앞다퉈 5세대 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 LG·삼성에 이어 내년 2분기께 대만업체들이 계획대로 5세대 라인을 가동하면 공급능력이 수요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5세대 라인은 지난 5월 가동에 들어간 LG필립스와 올 10월 가동할 예정인 삼성전자뿐이다. 공급능력도 기판 기준으로 월 5만장선. 그러나 LG가 월 3만장 규모의 2단계 5세대 투자를 올해 안으로 마무리할 예정이고 삼성도 월 4만장 규모의 추가 투자계획을 확정, 총 생산능력은 국내서만 월 12만장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는 이론적으로 15인치 패널 기준으로 무려 월 180만개가 증가하는 셈이다.
현재 LG와 삼성이 각각 월 100만개 안팎의 중대형 TFT LCD패널을 생산하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특히 LG가 최근 또다른 5세대 규격(1100×1250㎜)으로 월 6만장 규모의 추가투자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여기에 LG와 삼성의 선제공격에 자극받은 AUO·CPT·치메이·퀀타·한스타 등 대만 빅5 모두 내년 2분기를 전후해 5세대 라인을 가동한다고 천명, 만약 이들이 계획대로 5세대투자를 단행한다면 한국을 포함한 전체 5세대 생산능력은 월 30만장에 육박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처럼 공급능력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수요가 이를 따라주기 힘들 것이란 점. TFT LCD가 노트북에 이어 모니터 시장에서 CDT(모니터용 브라운관)를 압도, 돌풍을 계속하고 있고 TV수요가 내년부터 폭발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공급증가분을 소화하기엔 턱없이 부족, 공급과잉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다.
◇기우론=향후 수급전망을 종합할 때 내년 하반기 이후 시장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특히 내년 2분기 이후 공급과잉설이 불거지면서 현재의 수급상황도 불안하다. 이는 계절적 요인과 HP-컴팩 합병에 따른 후폭풍이 겹친 결과다. 이에 따라 대만을 필두로 관련업체들이 적정재고(2주치)를 넘어섰으며 공급가격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계절적으로 성수기로 접어들고 CPU가격 인하에 힘입은 PC수요가 증가할 9월말부터 수급상황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세를 몰아 17인치 이상의 대형 모니터용을 시작으로 내년에도 수요가 상승세를 타면서 수급균형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여기에 TV용 대형 패널 시장이 열린다면 공급과잉론은 기우에 그칠 것이란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내년 2분기 이후 TFT LCD 공급과잉설을 부정하는 또다른 근거는 대만업체들의 경영상황. 현재 대만 빅5업체가 모두 5세대 설비투자를 천명하고 있지만 실상은 AUO 등 1∼2개 업체를 제외하곤 실제 투자를 단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금사정이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공급과잉설이 만연하고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만의 후발업체에 투자할 곳이 몇이나 되겠냐”며 “최소한 2개 이상은 5세대 투자에 동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5세대 TFT LCD 설비투자는 LG필립스와 삼성전자, 그리고 대만의 1∼2개 업체가 주도할 것으로 보여 내년 2분기 이후 공급증가분은 생각처럼 늘어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로써 현재 유포되고 있는 공급과잉설은 한낱 기우에 그치거나 예상보다 그리 심각하지 않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설사 대만업체들이 과감하게 5세대 투자를 단행한다 해도 라인이 정상궤도(램프업)에 도달하고 수율이 적정 수준까지 올라가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LG와 삼성이 20인치 이상의 초대형 제품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