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은 아무래도 솔로로서의 이름보다는 이전에 활동했던 듀엣 ‘클래식’으로 더 잘 기억될 것이다. 그는 바로 ‘마법의 성’을 작곡한 인물이다. 이 곡을 위시해 그는 이승환이 부른 ‘덩크슛’,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등 가요의 명곡으로 남을 작품을 잇따라 써왔다. 탄탄한 화성을 바탕으로 순수하나 비장한 감성을 드러낸 곡들은 그를 이 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작곡자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그는 클래식 활동 이후 소리소문 없이 내리 3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음반들은 전에 비해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김광진의 입장에서는 그런 대중적 성과가 아닌 자신이 음악 패턴을 확대하지 못하는 것을 더 고민해왔다.
언젠가 만났을 때는 “마돈나와 같은 댄스 음악을 쓰고 싶다”는 괴상한(?) 소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따분하지 않으며 뭔가 상상력이 넘치는 발랄한 곡들을 만들었으면 하는 뜻이었다.
얼마 전 발표한 그의 4집 앨범 ‘솔베이지’는 바로 그런 음악적 상상의 확대라는 욕구를 반영한 음반이다. ‘마법의 성’ 분위기를 내는 앨범의 동명 곡 ‘솔베이지’ 그리고 ‘오디세이의 항해’와 같은 김광진표 발라드도 건재하지만, 귀를 놀라게 하는 곡은 모던록 풍의 ‘출근’, 근래 환영받는 애시드 재즈 스타일을 실험한 ‘비타민’, 그리고 빠르나 묘한 느낌의 노래 ‘동경 소녀’ 등이다.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동경 소녀’의 경우는 마이너 코드를 썼으면서도 업템포 리듬을 얹어 장조 분위기를 낸 역작으로 생각된다. 앨범에는 심지어 힙합과 재즈의 결합을 꾀한 ‘She’같은 곡도 있다.
좋게 말하면 ‘음악박물관’이지만 너무도 변화무쌍해 조금은 갑작스러울 수도 있다. 기존 팬들조차 단번에 수용하기는 힘든, 스타일의 광대한 지평선이다. 신보를 만들기 전 그가 겪은 고민과 몸부림을 어렵잖게 읽을 수 있다.
허나 말로는 음악이 울퉁불퉁할 것 같아도 막상 들으면 ‘김광진 그릇’을 벗어나지 않은 탓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편차 없이 무난하게 넘어간다. 그의 음악에 따라붙기도 했던 ‘지루함’은 상당부분 제거되어 있다. 신보가 거둔 가장 인상적인 성과일 것이다.
보컬은 늘 그랬듯 여전히 불안하다. 김광진과 같은 싱어송라이터가 손쉽게 음악적 변신을 기하지 못하는 것도 제한된 보컬 영역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청취자로 하여금 보컬 아닌 곡에 집중하도록 하는 마법(?)을 보유한 인물이다.
그리하여 때로 완벽과 거리가 먼 보컬마저 흠결로 기록되기는커녕 도리어 ‘개성’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확실히 그는 고(故) 유재하의 음악적 계승자다. 개개 곡마다 밀도와 성격이 분명히 구현된 근래 드문 역작이며 양질의 작·편곡집이다. 음악적 활기를 되찾으려는 김광진의 꿈은 이루어졌다.
<임진모 http://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