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 이대론 안된다>(5) 나아갈 방향

 

 영상물심의제도는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검열제가 3공화국, 그리고 유신시절까지 이어지다 이후 학력별 등급제, 연령별 등급제 등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는 항상 사회체제 유지와 청소년 보호 등의 대의명분과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는 저항논리가 서로 충돌했다. 특히 이같은 충돌은 지난 96년 정부의 사전검열기관인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가 위헌판결을 받은데 이어 지난 99년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이하 공진협)마저 위헌판결을 받으면서 분수령을 맞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공윤이나 공진협,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 등 역사속 심의기구는 어찌보면 시대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인권이나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고 이에 따른 사회적 합의의 결과가 각각 공윤·공진협·영등위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해 영등위는 결코 완전무결한 조직도, 영원불변한 조직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심의가 갖는 양면성과 이에 따른 논리가 충돌하는 한 심의기구는 시대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리매김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99년 출범한 영등위는 우리나라 심의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기구 시대를 열었다. 이는 그동안 정부 관계자들의 몫이었던 심의주체가 민간으로 넘어오면서 국가권력의 직접적인 검열을 완전히 차단하는 역사적 전환점을 마련한 계기가 됐다.

 특히 영등위는 체계화된 연령별 등급제를 정착시키면서 외국영상물의 무분별한 수입과 유해 영상물의 청소년 접근을 차단하는 등 ‘사회적 필터링 기구’로서 많은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영등위는 출범 3년동안 이같은 성과와 함께 적지 않은 부작용도 노출됐다. 심의기관 특유의 관료주의 팽배나 허술한 심의업무, 심의를 둘러싼 상업주의 시비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무엇보다 민간자율기구를 표방하면서도 정부가 예산이나 정책에 깊이 관여해 여전히 규제와 통제의 칼날을 휘두르는 것은 아직까지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상물에 대한 심의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강제’보다는 ‘자율’에 진행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영등위를 둘러싼 문제의식도 이런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등위가 진정한 민간자율심의기구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동안 여러번 지적된 △법과 제도 △조직 및 시스템 △사람 등 크게 세가지 영역에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우선 영등위의 법적기반인 현행 음비게법은 영등위를 자율기구로 규정하기 보다는 법적 강제력을 갖는 국가기관과 비슷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어떤 영상물도 영등위를 거쳐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법적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이 바로 그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때문에 “영등위가 진정한 민간자율기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처벌조항을 완화하는 등 강제보다는 업계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법조항이 개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영등위·방송위원회·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 윤리규제기관이 난립하면서 빚어지는 중복심의에 대한 폐해를 막기위해 법개정을 통해 심의기구를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똑같은 콘텐츠가 영화·비디오·인터넷 등 다른 매체에 담길 때마다 각기 다른 심의기구를 거쳐야 하는 것은 분명 모순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최근 PC게임 ‘워크래프트3’의 재심의 과정에서 빚어진 등급분류 체계의 허점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어 등급분류 체계 및 심의기준을 더욱 세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거세게 일고 있다. 성인 비디오물의 경우 똑같은 18세이용가 등급이라도 포르노물에 가까운 것에서부터 가벼운 멜로물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지만 현행 등급분류 기준으로는 이를 제대로 분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등위의 조직의 문제는 구성원들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요구된다. 더이상 검열기관으로서 권위나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서비스 정신과 전문성으로 스스로 영등위의 권위를 만들어가야 한다.

 심의 시스템과 관련해서는 보다 투명하고 체계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심의회의록을 일반에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의 메뉴얼을 정기적으로 발간한다면 보다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심의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심의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 심의위원들의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을 적극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영등위는 분명 갈림길에 서 있다. 규제와 자율의 끊임없는 충돌 속에서 또다른 분기점에 서 있다. 날로 높아지는 국민들의 문화적 소양과 기본권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기에는 영등위는 이미 너무 낡을대로 낡아 있다. 급부상하는 문화산업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도 낡은 영등위를 이젠 더이상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