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와 공인인증서는 아직도 평행선.’
온라인 금융서비스 대중화에 발맞춰 정부가 전자서명 공인인증서를 전 금융권에 확대하려는 방침이지만 여전히 제도적 맹점이 발목을 붙잡고 있다. 금융실명제법의 신원확인 조항이 온라인 계좌개설을 못하도록 못박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발굴, 확산시키려는 금융권과 업계는 실명제의 전향적인 개선을 촉구하고 있으나 정책당국은 현행 제도를 고수한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달 11일 발효된 개정 전자서명법 시행규칙은 13조 2항과 3항을 통해 ‘신원확인지침’을 마련, 금융실명제법과 동일한 내용의 대면확인을 의무화했다. 공인인증서를 최초 발급받는 사람이라면 사실상 은행창구에서 계좌를 개설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절차를 거치게 되는 셈. 공인인증서를 이용하면 온라인 금융서비스에 제한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현행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온라인계좌 개설은 불가능하다. 실명제가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등 기존 신원 확인수단만 인정할 뿐, 공인인증서는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권과 민간 전문업체들은 온라인계좌 개설이 불가능한 현실에서는 공인인증서 확대 도입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기관 입장에서 온라인계좌 개설은 곧 상품판매를 의미한다”면서 “조회나 계좌이체 정도에서 나아가 다양한 온라인 금융상품을 발굴하고 서비스를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도 “금융실명제법과 비교하자면 전자서명법의 처벌조항이 오히려 더 강도가 높은 게 사실”이라면서 “두 법의 취지가 서로 달라 온라인계좌 개설 여부는 시일을 두고 추진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금감원 등 금융 주무부처들은 금융실명제법의 취지가 불법자금의 온상이 되는 차명계좌의 양산을 막기 위한 제도인 만큼, 현행 실명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온라인상에서 자유롭게 계좌개설이 가능하다면 계좌추적 등 불법자금 감시체제도 훨씬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며 “자금세탁이 사라지는 상황이 오면 몰라도 당분간은 정부 입장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인터넷 금융서비스가 보편화되기까지 금융실명제를 둘러싼 논란의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업계와 정부의 줄다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