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전주 출생 △67년 인하대 전자공학과 졸업 △69∼91년 한국전자(현 KEC) 전무이사 △92년∼현재 광전자 대표이사 사장 △89년 철탑산업훈장 △97년 전자정보기술인클럽·한국전자산업진흥회 이사 △99년 전북대 반도체물성연구소 자문위원 △2000년 한국광과학회 이사 △2001년 사단법인 한국설비보전공학회 부회장 △부인 배민숙 여사(54)와 1남1녀 △취미:골프·바둑·낚시
이택렬 광전자 사장(57)은 손수 방진복을 껴입고 반도체 일관생산공장(Fab:팹)에 들어가 라인의 가동상태를 점검하는 맹렬 경영자다. 직접 고안해 특허까지 낸 장비가 있는가 하면 전북 익산 사장집무실을 아예 실험실(Lab)처럼 꾸며 놓았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설계도면을 그리는 공대생처럼 자신의 생각을 상품화하고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엔지니어들이 만든 제품의 동작 여부를 직접 테스트해 보기도 한다.
의아해하는 기자의 반응에 이 사장은 “경영자가 기술을 알아야 제대로 경영을 할 수 있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공계 출신이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69년 한국전자(현 KEC)에 반도체 개발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그러나 대다수가 반도체가 뭔지도 잘 모르는 시절부터 반도체 사업을 하려니 안해본 게 없다. 상품기획에서부터 트랜지스터와 LED패키지 개발, 생산공정 구축, 영업 및 마케팅 등을 도맡아 말 그대로 만능해결사였다.
92년 광전자 대표이사로 선임된 후 최초의 팹 ‘A1’ 라인 건설을 시작했을 때 그는 레이아웃에서부터 장비 선정까지 직접 진두지휘했다. 제품규격도 그가 정했다. 지금도 중고 장비가 나오면 물건을 직접 보러 다닌다고 했다.
괴짜사장. 그를 처음 만나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략 이쯤 생각한다. 하지만 1300여명 광전자 임직원들이나 제대로 그를 겪어 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간이침대를 집무실에 놓고 기숙할 정도로 일에는 철저하지만 임신한 여직원들의 출산휴가를 챙기고 장애인 직원들의 고용에 앞장서는 휴머니스트다. 잔소리쟁이 시어머니 같지만 “배울 것 많은 선배”라는 게 그에 대한 주변의 평이다.
그런 그가 요즘 조금 변했다. 생산라인에 내려와 보는 일이 뜸해진 것이다. 엔지니어들을 닥달(?)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열성 사장이 왜일까.
이 사장은 매주 월요일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자회사 타키오닉스(옛 대우전자 반도체사업부)로 출근한다. 물론 같은 건물에 광전자 서울영업본부가 함께 있어서기도 하지만 지난해 7월 인수한 타키오닉스를 챙기기 위해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실리콘게르마늄(SiGe) HBT 공정기술을 갖춘 생산라인이라는 게 매력”이었다며 인수이유를 설명하는 그는 이를 바탕으로 무선통신용 고주파(RF) 반도체(IC)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명확한 차세대 제품군을 확보한 만큼 익산, 구로 공장 이외에도 중국 다롄, 경기도 화성 등에 최신 공장을 짓기로하고 부지를 확보하고 세부 계획을 추진중이다.
광전자의 제2반도체 역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모습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이사장은 “물러날 때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산업에 몸을 담은 지 33년. ‘한국 반도체 역사의 산증인’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그의 말투나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간의 연륜들이 짙게 뭍어 나온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불굴의 장인정신’도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직접 쌓아온 반도체에 대한 노하우를 어떻게 하나라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싶어 객지생활에 밤낮을 보냈지만 이제는 똘똘한(?) 후임자를 골라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최근 조직을 사업본부제로 바꾸고 본부장들에게 매출에서부터 일체의 결제까지 책임경영을 맡긴 것도 이 때문이다. 영업본부장은 제조본부장으로부터 물건을 구입해다 판매해 자신의 매출을 올려야 하고 제조본부장은 어떻게든 좋은 물건을 만들어 이익을 남겨야 한다. 비용도 사업부별로 각각 산정한다. 외부 발표용은 아니지만 사업부마다 분기별 매출과 손익 등을 따로 잡아 서로 비교평가한다. 일종의 경영수업을 맡긴 셈이다.
‘전문경영인이 왜 후임 경영인까지 신경쓰냐’는 질문에 이 사장은 “전문경영인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내 회사라는 생각이 없으면 결코 회사의 성장을 견인할 수 없고 전문경영인으로서도 장수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이 드러나서인지 광전자 그룹 회장은 10여개 가까운 자회사 및 관계사 사장 중 이 사장을 가장 신뢰한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실제로 이 사장은 10년이 넘도록 광전자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왔고 최근 인수한 타키오닉스와 원광전자의 대표도 겸하고 있다.
오너나 대주주가 아닌 월급쟁이 사장이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철저한 조직관리와 수익관리, 그리고 오너와 얼마나 잘 커뮤니케이션 하느냐의 여부에 달렸다”는 다소 공식적인 답변에 뒤이어 “보스를 설득하려 들지 말고 이해하도록 도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전문경영인으로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영방침이나 신규사업계획이 있으면 딱딱하게 서류부터 들이대지 말고 사전에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교육(?)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타키오닉스나 원광전자 인수에 앞서 그가 1여년 전부터 관련사업의 중요성을 틈틈히 설명하는 등 오너의 이해도를 높여 온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반도체를 포함한 제조산업이 ‘굴뚝산업’이라는 용어로 비하되는 데 대해 가장 분괴한다는 이 사장은 한국 비메모리 반도체의 역사를 일군 장본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여전히 반도체 공장의 굴뚝을 지키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