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카드 시장 혼탁해지고 있어

 지방자치단체 교통카드 시장을 둘러싼 사업자들의 경쟁이 혼탁·과열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신규 사업권을 놓고 선정과정을 문제삼아 사업권 뒤집기가 시도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정부가 추진중인 전국 교통카드 표준화작업을 외면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대국민서비스 개선이라는 교통카드사업의 공익적 취지가 자칫하면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떠밀려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광주시가 ‘빛고을카드’ 사업자로 비자캐시코리아(대표 손재택)를 선정한 뒤 사업자 결정과정의 문제점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업자가 최종 확정된 후 지역언론 등에서 광주시버스운송사업조합이 주관기관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선정과정의 불투명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비자캐시의 한 관계자는 “주관기관의 성격에 대한 문제는 이미 사업추진 과정에서 거론했어야 하는데 이제와서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배후에 경쟁사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비자캐시측은 지난 4월 대전시 ‘한꿈이카드’ 사업자로 선정됐을 때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며 특정 경쟁사를 지목하고 있다.

 실제로 하나은행이 주관기관인 대전 한꿈이카드 사업자 선정당시 해당 경쟁사는 공식 보도자료를 배포, “비자캐시의 주주사인 하나은행이 사업자 선정주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막판에 제안서를 철회한 바 있다.

 정보통신부와 건설교통부 등이 추진하고 있는 전국 교통카드 표준화 작업도 사업자들의 비협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는 특히 전자화폐 업체인 A사, M사, 그리고 이들에게 솔루션을 제공했던 케이비테크놀러지(대표 조정일) 등이 당초 합의했던 기술규격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선보이기로 했던 표준SAM(전자화폐 호환 단말기칩) 개발이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늦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통부는 지난 주말까지 5개 전자화폐 업체를 대상으로 표준SAM 개발을 위한 기술규격 공개에 합의하도록 회합을 가졌으나 사업자들이 제대로 따라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통부 관계자는 “사업자들의 이해관계 조율이 가장 어렵다”면서 “하지만 표준SAM 개발에 불참한다면 향후 불이익이 큰 만큼 전향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M사 관계자는 “민간기업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인데 무작정 표준화 대의에 따를 수는 없다”며 “타 경쟁사의 움직임을 우선 지켜본 뒤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주변에서는 최근 충남과 전남 등지로 공급지역을 확대하고 있는 케이비테크놀러지가 표준화 참여에 따른 호혜적인 조건을 요구하는 한편 출자사인 에이캐시·마이비측과 표준SAM 납품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케이비테크놀러지측도 “전국 호환에 불참했으면 했지 일종의 지적재산권인 기술규격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는 없다”며 버티고 있다.

 5개 전자화폐 업체와 케이비테크놀러지가 기술규격 공개에 전격 합의한다면 교통카드 표준화는 급류를 탈 수 있지만 현재로선 협상과정의 난항이 예상된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자칫하면 사업자의 싸움에 시민의 발이 볼모로 잡힐 수 있다”면서 “정부나 지자체, 사업자 모두 일관된 원칙과 합리적인 양보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