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의 특징을 연구한 저서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들에 대한 설명은 ‘그들은 ∼하다. 그러나 또한 ∼하기도 하다’의 연속”이라며 당혹스러워 한 바 있다. 그가 살아서 캐논의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65)을 만났다면 같은 당혹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미타라이 사장은 미국식 경영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적 경영방식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미타라이 사장은 캐논 창업자의 조카로 1989년까지 캐논 미국 법인의 책임자를 지냈다. 캐논 미국 법인의 비약적인 성장을 진두지휘한 그는 미국적 경영에 흠뻑 젖어 별로 일본에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았다. ‘일본식 경영은 비합리적’이라는 이유였다. 일단 일본에 돌아온 미타라이 사장은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식 경영으로 캐논에 변화를 몰고 왔다. 그는 1995년 사장으로 임명된 후 한 달도 안돼 캐논의 PC사업부를 정리해 충격을 일으켰다. 그외에도 4개의 사업부를 정리하고 재고 관리를 혁신했다.
그러나 미타라이 사장도 때론 일본적 경영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종신고용제가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반도체 장비 스테퍼가 ‘캐논 기술력의 상징’이란 이유로 “이익은 기대하지 않으며 모두 재투자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장점유율에 집착하던 캐논의 전통에 메스를 들이댄 장본인이면서도 디지털 카메라, 프린터 등의 분야에선 시장점유율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일반인이 쉽게 접하는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복안이지만 수익을 중시하는 평소 신조와는 딴판이다. 다른 일본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앞다퉈 중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있지만 캐논은 “일본 제조업의 공동화를 막아야 한다”며 생산 기반의 중국 이전을 미루고 있다.
미타라이 사장은 양면성을 가진 경영자다. 하지만 일본의 주요 정보기술 기업들이 부진에 허덕일 때 캐논을 최고의 수익성을 가진 기업으로 키워냈고 가차없는 구조조정으로 사장 취임 후 6년 동안 순익을 2배 가까운 13억달러로 끌어올린 성공적인 경영자다. 지난해 캐논의 디지털 카메라 시장점유율은 전년에 비해 5% 상승한 14%였으며 프린터와 복사기 등 사무기기 매출도 크게 늘었다.
그는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 출신이며 미국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