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교통부가 다음달 시행을 목표로 고시한 ‘지방자치단체의 상·하수도 시설물 관리를 위한 범용프로그램의 기본설계서 및 품질인증기준안’이 관련업계와 지자체들로부터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잇따라 파문이 예상된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지리정보소프트웨어협회 회원사를 중심으로 하는 지리정보시스템(GIS)업계는 건교부가 국가지리정보시스템(NGIS) 기본계획에 의한 상·하수도 시설물관리 시스템 개발 중복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기준안 고시 내용이 현실과 달리 지나치게 엄격한 프로그램 규격을 요구하고 있어 자칫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에 수용주체인 지자체들도 건교부가 개별 지자체의 다양성을 감안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규격을 강제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GIS업계에서는 한국지리정보소프트웨어협회 등을 통해 조직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나서 두달 앞으로 다가온 시행을 앞두고 관계당국과 업계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우선 업계에서는 시설물 관리 시스템은 일반 소프트웨어와는 달리 규격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이번에 고시됨 기본설계서 의무지침에 반대하고 있다.
시설물관리시스템은 해당 데이타베이스에 따라 규격이 달라지므로 정형화된 표준 규격을 제시할 수 없고 지자체에 맞게 커스터마이징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소프트웨어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 프로그램을 재설계해야하므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만큼 9월 시행은 시간적으로 무리라는 주장이다.
김경민 우대칼스 사장은 “시행을 두달 남짓 앞두고 고시한 것은 건교부와 설계서 작업을 한 특정 업체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한국지리정보소프트웨어협회의 김정민 사무국장도 “업계가 공통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만한 규격을 제시하면 표준화 방침을 따른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고시내용이 규정한 기본설계서가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준화 정책 자체에 대한 반대입장도 잇따르고 있다. 소프트웨어 표준화를 통해 중복투자를 방지하겠다는 논리는 GIS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삼성SDS의 송만호 부장은 “상·하수도관리프로그램은 하드웨어처럼 정형화된 관리시스템이 아니며 지자체마다 요구하는 규격이 각각 달라 획일화된 규격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며 “시스템 구축 용도나 데이타베이스에 따라 달라지는 소프트웨어설계를 지자체 고유 영역으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범용프로그램 품질인증 기관으로 지정된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가 지리정보시스템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않아 형식에 그칠 공산도 크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한국지리정보소프트웨어협회는 GIS업계와 지자체의 입장을 수렴한 후 공동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각 지자체에서는 이미 모든 지하시설물 GIS프로젝트 발주를 9월 이후로 미루고 건교부 고시 내용 검토와 대응 방안 모색에 들어간 상태다.
상·하수도관리시스템 최대 발주처인 서울시의 경우 이미 관련 시스템을 구축해 일단 이번 시행령 적용 대상에서는 제외된 상태지만 시스템 유지보수를 위한 갱신이나 보완 작업시 기본설계서를 적용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관계 부서간 입장을 정리 중이다.
서울시 지리정보담당관실 관계자는 “표준화를 통해 중복투자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지자체마다 특성이 다른만큼 지나치게 상세한 규격은 발주기관이나 업체에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 측은 “특정업체 솔루션 규격 도입 논란은 정부 용역을 수행한 업체의 기득권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이며 기본설계서는 지자체가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 골격만을 제시한 것이므로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