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지금 워싱턴은…

 ◆최성 통일정보센터 소장

  

 언제부터인지 새벽에 눈을 뜨면 미국 증시 소식부터 듣고 그날 하루의 희노애락을 점친다는 고국 투자자들의 넋두리를 떠올리면서 오늘은 이곳 워싱턴의 분위기를 잠시 전하고자 한다.

 사실 워싱턴의 현재 상황은 무더운 날씨나 월드컵 후일담를 즐길 만큼 한가롭지 않다.

 펀더멘털(기초 여건)은 튼튼하며 경기는 회복 중이라는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의 상원 증언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은 경기 전망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더블 팁(경기 재하강)’의 가능성을 거듭 부인하고 있는 미 정부에 대해 경기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일침을 놓은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8000선을 위협하고 있고, 나스닥지수가 지난 97년 4월 이후 최저치 신기록을 경신 중인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미국민은 지난 2000년 다우지수가 최고를 기록한 이래 3차례나 바닥을 잘못 예측하는 바람에 투자자들이 증시에 조기진입, 적지않은 경제적 손실을 입은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어렵기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업체 주가 역시 기술주 매도와 형편없는 실적으로 상장공모가를 밑돌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의 벤처투자 열기 역시 과거에 비해 현저히 가라앉았는데 여기에는 우선 벤처캐피털들의 투자회사 상장을 통한 자금회수가 어려워진 데다 벤처기업의 주식을 사고 파는 나스닥시장이 얼어붙은 데 기인한 것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가 지난 1분기 5% 정도 줄어든 것도 최근 4년 동안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우울한 소식들에도 불구하고 이곳 워싱턴에는 미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도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은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예상보다 밑돌긴 했지만 성장을 계속 했고 GDP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소비가 아직 크게 위축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들이다. 특히 주식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경기는 꾸준히 상승하는 등 전반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미 정부는 다가오는 세계 경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최근 국제무역협상권한을 강화한 무역촉진권한(패스트 트랙) 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실리콘밸리 등 미국 하이테크업체가 수출확대를 기대하며 일제히 반색하고 있다. 미 행정부가 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 시 이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함으로써 반도체와 컴퓨터·통신장비 같은 첨단 하드웨어제품과 서비스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로써 중국이나 베트남·브라질과 같은 신흥 IT 성장국가들이 갖고 있는 각종 무역장벽(고관세·규제 등)에 대한 미 정부와 기업의 파상적인 공세가 예상된다. 물론 이 같은 흐름을 볼 때 한국도 사정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간에 미 의회는 자국 행정부의 고성능 컴퓨터 수출완화정책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미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이 러시아와 중국·인도를 비롯한 중동지역 국가들에 대한 자국 정부의 고성능 컴퓨터 수출정책에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남북간 정보통신교류가 상당히 진전되고 있는 우리로서는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국내 관련 기업들은 그동안 고성능 컴퓨터의 군사적 전용 방지라는 명목 아래 대북 IT교류를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는 바세나르협정 등의 개정 등을 강력히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총성없는 국제경제전쟁이 본격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와중에 어제 만난 IT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친구는 의미심장한 조언을 던졌다.

 미국이 한국 시장을 비롯해 후발 경제성장국가를 주타깃으로 설정하듯 한국도 미국 시장, 특히 실리콘밸리만이 아닌 세계 정치의 심장부이자 미국 내 정부간 계약을 주도하고 있는 워싱턴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어떤가라는 말이다.

 백악관·국무부·미 의회, 그리고 세계 유수기업의 에이전시가 몰려 있는 워싱턴은 미 정부를 상대로 한 계약은 물론 세계 시장을 향한 미 의회 차원의 합법적인 로비활동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화에서 입증됐듯 최선의 공격이 최대의 방어라는 말을 새삼 느끼게 하는 친구의 조언이다.